배익기씨가 자택 화재 이후인 2017년 4월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사진. 하단이 불에 그을려 있다. 연합뉴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국가소유라는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도 소장자인 배익기(56)씨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1000억원을 주면 국가에 반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그 근거가 되는 상주본 가치 1조원설의 진실은 무엇일까.


상주본이 2008년 7월 안동MBC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진위 확인 및 가치 산정에 참여했던 서지학자 경북대 남권희(사진) 교수를 17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남 교수는 “1조원설은 오도된 것”이라며 “문화재청의 요청으로 몇몇 학자와 자문에 응했다. 당시 금속활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책인 ‘직지심체요절’의 가치를 참고했는데, 경제학자들이 8000억원 정도라고 평가했었다. 그 가격은 직지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직지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연관 산업, 즉 특허나 전시 등 경제 파급효과를 감안했을 때 그 정도라는 것이었다. 훈민정음은 상징적 의미가 있으니 직지보다 높아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1조원 정도는 돼야 된다는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씨가 1조원의 10분의 1인 1000억원을 요구하며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배씨도 공개하기 전에 몇몇 박물관에 100억원에 매매 의사를 타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영상을 통해서이지만 30매로 된 상주본 전체를 다 본 학자다. 그는 “당시 안동MBC에서 상주본 전체를 촬영했고, 공개하기 전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해서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낱장으로 해체되지 않고 묶인 상태에서 한 페이지씩 다 찍었더라. 지질(紙質)이나 책의 형태, 묶인 방법 등으로 볼 때 진품이 확실했다”고 했다.

그러나 상주본이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세간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상주본은 간송본과 같은 판목으로 찍은 책이지만,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떨어져나갔다. 그래서 17~18세기의 원 소장자가 앞에 한 장을 따로 붙이고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라는 제목을 붙였다. 다만 여백에 쓴 묵서(메모)가 있다는 점에서 간송본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간송본의 경우 맨 앞의 한 장이 없다. 연구자들이 찾고 싶은 것은 그 한 장이었다. 그게 없으니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선 맥이 빠진다”고 했다. 또 “상주본은 습기 탓에 얼룩이 많았다. 간송본은 보존 상태가 완전하다”고 설명했다.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 집에 화재가 나면서 훼손됐다. 남 교수는 “불타기 전에 이미 낱장으로 분리한 것 같았다. 국어학자 몇 분이 찾아가 실물을 봤는데, 낱장을 비닐에 넣어 보여줬다고 했다”고 했다. 문화재는 원형이 훼손되면 가치가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지난 15일 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배씨를 만나 반환을 공식 요청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에 들어간다는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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