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정수리가 희끗희끗하다. 하나 둘 돋아나던 흰머리가 이제는 정기적인 염색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최근에는 두피가 따가워지는 부작용이 생겨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염색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영향이 크다. 작년 이맘때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창을 우연히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동안 줄곧 하얗게 서리 내린 그의 머리카락이 신경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동창의 머리가 어른거렸다. 나보다 나이도 적은데 머리가 희니 늙수그레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흰머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늘면서 이런 심리를 자극하는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자연스러운 색상과 윤기 나는 머릿결을 보장한다는 염색약 광고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혹시나 해서 지갑을 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나이가 들면서 흰머리가 생기는 건 자연의 섭리다. 그럼에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여전히 마음의 눈은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듯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괴리감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듯싶다. 루이 14세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경륜과 지적 수준을 자랑하고 싶은 귀족들 사이에서 밀가루를 잔뜩 뿌린 흰 가발이 유행했다지만 그건 그 시대의 모습일 뿐이다. 겉모습과는 달리 마음은 아직 젊다고 느낀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떨까. 무게 중심을 내면으로 옮겨보면 잊고 있던 마음 속 청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60대의 모델 김칠두씨도 그중 하나다. 한때 순댓국집을 운영했던 그가 모델 학원에 등록한 건 예순이 넘어서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 젊은 모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존재감에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를 시니어 모델로 소개하는데 나는 이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레이 헤어와 수염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삼아 런웨이를 활보하는 모습은 시니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모델 그 자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굴에 굵은 주름이 팼어도 김칠두씨의 마음은 청년임이 틀림없다. 문득 내 마음의 나이는 몇 살일지 궁금해진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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