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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집’ 성전이 ‘강도의 소굴’ 됨에 분노하신 예수

박호종 목사의 ‘다음세대와 기도의 집을 세우라’ <3>

박호종 더크로스처치 목사가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영동프라자쇼핑센터 지하에 위치한 예배당에서 주일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더크로스처치 제공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이신 분노를 기억하는가. 주님은 성전 안에서 돈을 바꾸어 주거나 매매하던 자들을 내쫓으시며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

사실 이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행하던 자들이었다. 흠이 없는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먼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여유가 없던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비둘기를 사거나 돈을 바꿔야 했다. 예수님이 이런 상황들을 모르셨을 리 없다. 다만 주님은 본질을 잃어버린 성전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셨다. 종교가 돼버린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이 머무를 수 없었다. 이것이 주님에게는 고통이었다.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떨까. 혹여나 주님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우리를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언제나 신랑의 마음과 연합한 신부된 교회를 보기 원하셨다.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남편 옆에 설 수 있는 신부, 신랑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신부, 신랑의 마음과 하나 되어서 신랑에게 주어진 권세와 권위로 함께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신부, 바로 기도의 집의 정체성을 지닌 교회이다. 그래서 주님은 교회를 기도의 집의 모습으로 단장하고 계신다.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 사랑 안에서 그의 능력을 받은 신부된 교회가 마지막 때에 반드시 서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 본질적 요소인 기도가 회복돼야 한다. 교회의 부르심이자 근본적 모습이자 존재 방법인 기도의 집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돼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 활발하게 작동된다. 복음이 능력으로 증거되고 세상에 매이지 않는 하늘의 소망이 회복되며, 무엇보다 가장 큰 부흥을 운반할 마지막 주자들이 살아난다.

다음세대를 키우는 문제야말로 주님이 오실 날을 준비하는 교회들의 가장 큰 관심이자 고민일 것이다. ‘10/40창(10/40 Window)’을 주창했던 루이스 부시는 신개념 선교 지대로 ‘4/14창(4/14 Window)’을 말했다. 4세에서 14세의 다음세대를 잃으면, 교회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 기독교만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때, 교회 안 다음세대가 처한 상황들은 부정할 수 없이 어두워 보인다. 도시나 농어촌을 막론하고 다음세대 부서가 존재하는 교회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대학가에서 활동하는 크리스천들이 1% 안팎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교회의 절반이 교회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보고도 들린다.

이때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복음 전수가 시급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의 영원한 소망이 그들에게 절실하다. 그러나 이전 세대보다 강렬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다. 동성애 이슈 하나만을 봐도 그렇다. 신앙생활을 수십년 해 온 교회 중직자들 안에서조차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때이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하는 성도의 믿음이 조롱거리를 넘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혐오사상이 될 수 있다. 어떻게 이 시대의 다음세대가 복음 안에서 살아가도록 할 것인가. 이 나라에 심겨졌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믿음을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도하는 집으로 선 교회가 강력한 기도와 예배의 영성을 다음세대에게 공급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광대하심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이 땅에서 예배할 때 이루어지는 영적 환희가 다음세대를 사로잡게 해야 한다.

다윗처럼 환난의 날에도, 기쁜 날에도 예배할 수 있는 자들이 결국 이 시대를 이겨낼 것이다. 교회는 기도와 예배와 말씀의 삶을 전수하기 위해 다음세대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마음을 사기 위해 플랫폼을 확장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일에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

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칼슘이 함유된 음식을 먹지만 막상 뼈로 칼슘 성분을 전달하는 전해질이 몸 안에 부족하다면, 소화기관을 거쳐 배출되어 버릴 뿐이다. 교회는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해 그들의 영혼에 생명을 전달할 ‘전해질’을 준비해야 한다. 진리가 생명으로 역동하는 예배는 바로 그러한 전해질이다. 복음의 생명력이 다음세대에게 흡수되기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전해질이 돼야 한다.

왕이 된 다윗이 4000명의 레위인들을 모아 찬양 예배자로 세우고 주의 영이 거하시는 장막을 섬기게 한 일에는 비밀이 있다. 다윗의 장막에서 밤낮으로 울려 퍼진 찬양과 기도의 소리는 온 이스라엘을 감싸는 생기가 되었다. 이처럼 기도와 예배의 본질을 깨달은 다음세대가 서야 한다. 말씀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자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자들이 마지막 부흥의 주자로 설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다른 세대’가 아닌 ‘부흥의 세대’로 준비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다음세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다음을 이어갈 새로운 주역이 되도록 준비시킬 수 있는가.

박호종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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