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새신자 정착 위해 혼신을 다해 집중강의… 심은대로 거두게 하셔

<14> 목회, 결국 사람 세우는 일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교회에서 개최된 ‘화요행복학교’에서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전도 후 등록 성도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정착시키고 일꾼으로 세워갈 것인가는 큰 숙제였다. 어렵게 모셔온 성도가 예배에 한두 번 참여한 후 자신은 교회 체질이 아니라는 등 변명을 하면서 나오지 않겠다고 거절할 때 오는 상실감은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성도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연약한 지체들마저 덩달아 넘어지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는 절망적이었다. 다양한 양육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었지만, 시행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한참을 헤매다 깨달았다.

결국 정신이 문제였다. 제자훈련에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이 ‘광인론’이다. 제자훈련에 미쳐야 한다는 강의를 들으면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정말 제자훈련에 미쳐 버린 목회자가 얼마나 있을까.

열심을 내는 것과 미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우선 사람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세워가야 한다는 목마름을 온몸으로 느끼고 갈망하는 일 없이는 결과를 낳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정착 프로그램을 시행하려고 하니 맡길 일꾼이 없었다. 모두 초신자였고 연약한 지체들인데 누구에게 이분들을 부탁한단 말인가. 맡길 수도 없고 맡을 사람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1999년부터 시작한 게 화요성경학교였다. ‘화요일 누가 교회에 교육한다고 하면 오겠는가.’ 이런 의문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났다. 일단 광고부터 하고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거니 절망적 답변만 돌아왔다.

“화요일 오전에 오실 수 있으신지요?” “뭐하시는데요?” “네, 성경공부를 진행해 보려고요. 성경을 알아야 신앙이 자라지요.” “아, 네….” 그렇게 새신자와의 전화는 맥없이 끊어졌고 출석도 끊겼다. 온몸의 힘이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그때 본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호숫가에 앉혀 놓으신 후 배를 타고 강론하셨다. 설교 내용은 그들 삶의 핵심을 짚어주는 교훈적 내용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현장을 다니시면서 임상훈련을 통해 일꾼으로 세우셨다.

어쨌건 나는 그 시점에서 성도를 교인으로 세우기 위해 뭔가 해야 할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죽어라 전도해 겨우 모셔 왔는데 정작 교회에 등록한 후 곧바로 떠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적 사건이었다.

새가족 정착률 100%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는 한 영혼도 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절대 한 사람도 포기 못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붙잡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월요일 밤이면 꼬박 밤을 지새우고 강의안을 준비했다. 강의 목적은 하나였다. 교회를 다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사회생활과 비교해도 신앙생활을 통해 얻는 유익을 따라잡을 수 없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치려고 몸부림했다. 제자훈련을 한 주에 6팀씩 인도했다. 전도해온 분들을 일꾼으로 세우기 위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매달린 일이었는데 몇 년 안 돼 내 체력도, 의지도 거의 바닥났다. 그리고 원하는 만큼 훈련을 효과적으로 감당해내지도 못했다. 몇 팀을 세우는데 5년여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시간이 없었다.

방향을 바꿔 집중강의를 시작했다. 처음 오신 몇 분을 위해 혼신을 다해 강의했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없다. 진리는 변함이 없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준비한 만큼 결과는 있는 법이다. 10여명 모였던 모임의 숫자가 매주 늘어갔다. 입소문이 나고 있었다. 이 일로 전도 현장에 나가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유익했다고 이웃을 데려오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고 보니 매주 수강생이 150여명이 됐다. 설레는 화요일이 되었다. 참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도들이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목사님, 이 강의 이름을 화요행복학교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왜요?” “아니 성경학교라고 하니까 안 믿는 친구들이 어렵겠다고 거절해요. 그런데 행복학교 가자고 하면 더 쉬울 것 같아서요.” 그 말이 옳았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켰고 가정을 변화시켰다. 매주 집중강의는 삶의 현장에서 폭발적인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주 간증자가 나타났다. 서로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신앙의 놀라운 역사를 나누다가 공감하고 가까워지고 어우러지는 일들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초대 교회 같은 모습이 회복되고 있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꿈에 그리던 그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찾게 되었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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