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기아대책 30주년에 만난 ‘기대봉사단’

하나님 부름받아 어머니 마음으로… 갈급한 영혼 보듬다

유대인의 정신적·문화적 유산이라 불리는 탈무드는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머니를 보냈다”고 기록한다. ‘어머니’가 하나님 품을 대신 느끼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말이다. 한때 어머니가 있었고 지금 어머니가 필요하지만 어머니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각지에서 ‘기대봉사단’이란 이름으로 사랑과 나눔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이다.

정하희 기대봉사단이 2012년 우간다 아무리아 마을에서 결연아동 쿠미를 안아주며 웃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17일 오후 기아대책 30주년을 맞아 경북 포항 한동대에서 열린 ‘기대봉사단 기념대회’ 현장에서는 고국을 찾은 이 시대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2008년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난 정하희(66) 기대봉사단은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아이들의 엄마로 12년째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요? 400명이에요. 저를 ‘마마 한나’라고 불러요. 자식 부자로 치면 월드클래스 아닌가요? 하하.”

호탕한 웃음과 살짝 주름진 눈가엔 그동안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에게 전했을 수백만 번의 미소와 사랑, 고된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정 기대봉사단의 보금자리는 수도 캄팔라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차로 7시간이나 달려 도착하는 아무리아 마을이다. 전체 인구의 8%(273만명)가 에이즈 환자인 우간다에서도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오랜 기간 내전을 겪으며 반군과 민간자위대가 주둔하는 동안 마을엔 급속도로 에이즈가 퍼졌다.

“에이즈는 모든 병을 빨아들이죠. 위생적인 환경을 기대하기 힘들고 영양공급도 어렵다보니 일찍 사망하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모기에 물린 작은 자국도 긁다보면 진물이 흘러내리고 고름주머니가 달리고 구멍이 뚫리기까지 해요.”

그런 아이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끼니를 챙긴 게 정 기대봉사단의 첫 사역이었다. 하지만 2년여 활동을 하면서 영양공급을 넘어 약물지원, 교육을 통한 자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필요’를 발견하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절실한 기도의 끝엔 하나님이 예비하신 ‘도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기도 있었다. 2011년 어느 날. 아이들에게 나눠 줄 영양식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자동차 타이어가 큰 웅덩이에 빠져 차가 뒤집히면서 팔과 어깨가 부러지고 척추도 어긋나는 사고를 당했다. 한국 의료진은 ‘사역 중단’을 권고했지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엔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치료 2개월여 만에 다시 우간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적 같은 육체의 회복은 마을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열매를 맺게 했다. 아무리아 지역 내 유일의 에이즈아동센터가 건립됐고 함께 운영되는 유치원과 직업학교에선 이 지역을 변화시킬 아이들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최원금(오른쪽) 이현주 기대봉사단이 201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해피센터에서 교육받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기아대책 제공

최원금(59) 이현주(55) 기대봉사단 부부의 아침은 밥 750인분을 초대형 솥에 안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이 밥을 준비하는 동안 자원봉사자들은 분주하게 닭고기를 조리하고 채소를 썰어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빈민촌에 사랑을 전하는 ‘해피센터’의 일상이다.

따뜻한 밥과 고소한 닭튀김이 정성스레 준비된 도시락이 향하는 곳은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마을’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기대봉사단이 전하는 도시락은 한 끼 식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이 끼니를 위해 범법자가 되지 않게 하는 방어막이자 희망의 끈을 붙들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빈민 사역은 올해로 26년쨉니다. 1994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인교회를 목회하면서 빈민을 찾았던 게 모판이 돼 2008년부턴 기대봉사단으로 본격 활동을 하게 됐어요.”(최 기대봉사단)

부부에겐 지나온 26년이 ‘하나님의 이끄심’ 그 자체였다. 각각 대학생과 고등학생 시절 같은 집회에 참석해 처음 선교에 대한 소명을 품었고, 이사로 인해 옮기게 된 교회에 같은 날 등록해 인연을 맺었다.

이 기대봉사단은 “같은 날 중고등부 교사로 임명돼 활동하면서 선교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게 된 것, 남편이 군 복무 직후 신학을 공부하면서 졸업 논문으로 ‘인도네시아 무슬림을 향한 선교 방안’을 택하게 된 것, 오지 마을이 아니라 도심의 빈민촌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 것도 오늘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2009년부턴 학업이 중단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회에 나가도록 돕고 있다. 현재 5곳의 학교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236명이 믿음의 지도자로 세워지고 있다. “뚜한 뭄버르까띠(하나님이 너를 축복한단다)”를 입에 달고 사는 두 사람의 꿈은 빈민촌 아이들 모두가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가정을 변화시켜 절망의 땅에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포항=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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