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기자가 지난 14일 인터넷 카페에서 스테로이드 제품 구입을 문의하자 9분 만에 불법 유통 업자가 보내온 사진.

‘아나바100정 8.5, 놀바100정 5.5 제약 있어요’.

스테로이드 제품 중 하나인 ‘아나바 놀바’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자 9분 만에 달린 유통업자의 댓글이다. 지난 14일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구매를 가장한 글을 올렸더니 불법 유통업자는 텔레그램 아이디를 보내며 이같이 답했다.

아나바는 스테로이드의 한 종류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제품이다. 놀바는 ‘놀바덱스’라는 제품의 줄임말로 일종의 부작용 방지제(케어 제품)다. 제약은 국내 제약사 제품이라는 의미다. 해당 판매자는 스테로이드 약통이 가득 들어찬 상자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기도 했다. 모두 의사 처방 없이는 구입할 수 없는 제품들이다.

트위터를 통해 다른 업자를 접촉했을 때도 비슷했다. 해당 판매자는 가격을 묻는 질문에 ‘경구제, 알약 둘 다 있다. 디볼 7만, 에난 11 이퀴 9’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디아나볼, 에난데이트, 이퀴포이즈를 뜻한다. 그는 “최소 수량 2개부터 판매하며 계좌 거래 방식을 쓴다”고 했다. 품질에 대해서는 ‘외국산 정품’이라면서도 “성분표는 없고,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 달라서 확답을 못 준다”고 했다.

트위터를 통해 다른 유통업자와 나눈 대화 내용.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대적인 기획 수사를 벌이고 있는 중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스테로이드 불법 유통이 버젓이 활개 치고 있는 것으로 18일 나타났다. 보건 당국의 감시 강화에도 불법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건 제도의 허점에 있다. 불법 판매 행위는 처벌하지만 복용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 ‘몸짱’ 열풍이 일면서 스테로이드 약물을 구입하려는 수요층은 탄탄해졌다. 불법 공급·판매책 처벌만으로는 ‘생태계’를 막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식약처의 스테로이드 불법 판매 적발 건수는 2016년 272건에서 지난해 600건, 올해는 5월 말 기준 4373건까지 늘었다. 스포츠 관계자들은 구매자를 처벌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보디빌더 A씨는 “이미 어린 선수들까지 구매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며 “일부 마니아층 일반인까지 약물을 사려고 달려드니 판매자 입장에서는 불법을 무릅쓰고라도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유통업자 B씨도 “예전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오랜 노하우로 쌓인 비교적 안전한 복용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며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이 잘못된 정보로 약을 잘못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지난해 2월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매한 사람에 대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제 등은 심리적 의존성이 강하고 부작용 또한 심각해 무분별한 구매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관계 부처와 시민단체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식약처는 “마약류처럼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률로 구매 자체를 제한하는 제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과도하다”며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소비자연맹은 “소비자가 판매자의 불법 여부를 확인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자문위원 이종하 경희대 재활의학과 교수는 “의사 처방 없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남성호르몬 생성이 위축되면서 고환이 위축되고 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장기간 복용할 경우 동맥경화가 생기고 심장 근육이 비대해져 돌연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독성이 있어 약물에 계속 의존하게 된다. 마약의 금단증상처럼 충동 조절이 어렵고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이동훈 박사도 “중학생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지속적으로 맞은 상태에서 부상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며 “성장기 아이들의 경우 성장판이 닫혀 키가 자라지 않는 등 치명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판 정현수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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