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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김나래] 동네북 된 여의도, 무시만 하다간…


“아니, 지금 여의도를 왜 가.”

몇 년 만에 다시 국회 출입을 하게 됐다고, 정치부로 옮긴다고 하자 하나같이 안타깝게 쳐다봤다. 요즘처럼 국회의원들이 욕먹는 시대에,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다니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떤 이는 “자기 밥값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가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해 달라”고 했다.

동네북이 된 국회를 욕하는 데는 지지성향도 상관없어 보였다. 여당 지지자도, 야당 지지자도 국회를 욕할 때는 한마음이 됐다. 여든 야든 상관없이 여의도는 일 안 하고 쌈박질만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곳으로 보는 듯했다.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런 걸까. 막상 와서 만나본 여야 의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위축돼 있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선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느껴졌다. “여당이 잘못하는 게 많은데도, 우리 당은 싫대요. 자유한국당은 징그러워서 쳐다보지도 않는대요.” 이렇게 말하는 야당 당직자의 표정에선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당내 다양한 목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던 과거와 달리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외로 조용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실패했던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당 지도부는 유난히 말을 조심하고 입을 단속하는 분위기였다. 집권당으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강해 보였다. 하지만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는 것 이외에 집권당으로서 별다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에서 뿐만 아니라 대정부질문을 할 때도,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할 때도 국회의원들은 입법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이야기로 장관과 신경전을 벌이는 야당 의원의 모습은 보는 사람이 다 민망했다. 일본의 수출 제재 관련 대책용 추경이라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관련 민원을 해결하려는 의원들의 의지가 더 크게 반영되고 있는 듯했다. 지역구 숙원 사업 때문에 정해진 룰에 상관없이 상임위원장을 하겠다고 버티는 야당 의원. 지역구 주민들의 계속되는 압박과 요청에 평소 정책적 소신과 심지어 당론과도 배치되는 법률을 발의한 여당 의원까지. 국회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진풍경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눈을 크게 뜨고 여의도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보기 싫다고, 한심하다고, 뒤로 제쳐놓고 욕만 해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구 의원이 무슨 법을 발의했는지, 국회에서 도대체 어떤 의정활동을 했는지 따져보면 좋겠다. 지지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 안에서 지역구 의원이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떤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데 이바지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은 여의도를 무시하지만, 국회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생 현장을 찾아가 여론을 수렴하고, 이를 법안으로 만들며, 정부의 예산을 심의하는 것 같은 일들은 하루아침에 누구나 뚝딱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 정당에서는 벌써 선거를 앞두고 인재영입위원회를 구성해 명망가 중심의 몇몇을 내세우며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런 명망가보다는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면 좋겠다. 국회의원이란 지위에 걸맞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을 찾아서 국회에 입성시키자는 것이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국회의 모습은 실망스럽지만,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동안 국민은 중요한 선거 때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변곡점마다 국민들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이뤄온 것은 언제나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이 아니라 깨어 있는 대다수 국민이었다. 여의도가 밉고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의원들의 물갈이는 국민이 직접 해야만 한다. 그러니 1년도 채 안 남은 총선 때까지, 여의도를 잘 지켜보자. 내년 총선에도 제대로 물갈이를 못한 채 4년을 또 욕만 하며 보낼 순 없지 않은가.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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