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많지만 찌는 듯이 더운 날에는 묵사발이 떠오른다. 수년 전, 나는 단기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장기적으로 할 일을 구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일을 찾기 힘들어 단기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하루는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당일알바 구인 공고를 보고 연락을 해서 그들이 알려준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스무 명 남짓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는 정보가 잘못 전달되어 열다섯 명 모집인데 스무 명을 모집했다면서 미안하지만 다섯 명은 교통비를 포함한 위로금을 줄 테니 돌아가 달라고 했다. 그는 다섯 명의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더운 날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 곳까지 온 사람들에게 그냥 돌아가라니. 우리가 화를 내기도 전에 그는 우리에게 돈 봉투를 건네주었다.

밖으로 나와 봉투를 열어보니 1만5000원이 들어 있었다. 교통비보다 많으니 이익을 본 것 같기도 했고 오늘 하루 제대로 일할 기회를 잃었으니 손해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우리 다섯 명은 어색하게 서 있다가 마주 보며 실없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 여자였다. 삼사십대 여자. 설마 그런 걸까. 나이순으로 여자만 잘라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세 여자는 곧장 자기 갈 길로 갔지만 한 여자는 나와 나란히 지하철역 출구 쪽으로 걸었다.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떨치기 위해 그녀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녀는 뜬금없이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녀가 말했다. “그럼 우리 밥이라도 먹고 갈래요? 기운이 빠져서 도저히 집에 못 가겠어요.” 우리는 가까운 시장 입구로 들어갔다. 습도도 높았지만 유난히 햇살이 강한 날이었다. 불쾌감 때문에 입맛이 없는데도 허기가 졌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묵사발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봉투에서 돈을 꺼내 각자 묵사발을 사 먹었다. 먹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묵사발을 먹는 동안은 조금 전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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