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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준엽] 일본이 준 국산화 기회


기업의 DNA는 이윤 추구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만들어내는 게 기업의 지향점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여기저기서 소재 국산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왜 그동안 소재 국산화에 소홀했느냐고 질책을 하기도 한다. 기업으로선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결정을 한 것뿐이다. 소재의 품질이 좋고, 납기일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본 기업이 우선순위에 있었다. 안정적인 공급이 확보된 상황에서 새로운 업체를 찾을 이유가 적었다.

그런데 이제 ‘게임의 법칙’이 달라졌다. 일본이 불문율을 스스로 깨버린 탓이다. 현재 전 세계 기업들은 글로벌 협업 체계를 기본 전제로 깔고 있다. 서로 비용을 줄이고,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일본 전자 업체는 2000년대 들어 한국 업체에 왕좌를 내줬다. 완제품 경쟁력은 떨어졌지만, 소재 분야에서만큼은 일본의 경쟁력이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다. 그런 일본 소재 기업의 평판을 일본이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이번 수출 규제는 일본이 정치적 혹은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수단을 써 해결하려는 의도가 명확하다. 일본 정부로서는 우리나라에 고통을 주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 일본 기업은 수십년간 쌓아온 ‘신뢰’를 한번에 잃을 위기에 처했다.

공급 안정성이 깨진 마당에 우리 기업들도 더 이상 일본산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국산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위성은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졌다는 한계에 부딪혔다면 이제는 기업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옵션이 됐다. 소재 국산화가 잘 되려면 소재를 만드는 기업뿐만 아니라 소재를 사는 대기업들도 필요성이 생겨야 한다. 당장 일본이 소재 규제를 시작하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대체재 찾기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내 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산화가 잘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정부와 원만한 협력이 중요하다. 규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제주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체품을 개발하는 데 인허가에 2년이 걸리면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기업들은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하지만, 정부가 미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규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야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뛸 수 있다.

물론 무조건 기업들의 주장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불화수소의 경우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규제가 강화되며 국내에 생산 공장을 짓는 게 쉽지 않다. 이걸 무작정 풀어줄 순 없다. 불화수소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환경 규제를 무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불화수소는 위험 물질이라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원칙은 철저히 지키되 필요한 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끼리 다투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제주포럼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대기업이 국내 업체의 소재를 사주지 않는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내 불화수소는 아직 품질이 못 미친다”고 하자 박 장관은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했다면 지금 상황이 어땠을까”라고 되받아쳤다. 두 사람 다 맞는 말이다. 아직 국산 소재 품질이 못 미치는 것도 맞고, 과거부터 대·중소기업이 함께했으면 지금 달랐을 것이라는 말도 맞는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잘하는 거다. 지난 일을 두고 내 말이 맞는다고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모든 걸 국산화하겠다는 과도한 의욕도 경계해야 한다. 일본은 자신만 생각하며 글로벌 기업 생태계를 교란했지만,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건전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국산화의 방점은 ‘경제 안보’ 차원에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소재 수급처를 다변화하면서 핵심 역량은 내재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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