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분쟁에서 일본 아닌 우리 내부를 겨냥한 조국 수석의 SNS
전체주의 그림자, 프레임 정치, 노이즈 마케팅이 그 선동의 배경에 깔려 있다
지금 청와대는 현실적 해법을 찾는 데 머리를 싸매야 할 때
조 수석, 이제 그만하시오


“대통령의 비서는 입이 없다”는 말은 이제 창고에 넣어야 한다. 대통령의 입보다 더 큰 입을 가진 비서가 활개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직의 막중한 ‘책임(accountability)’ 탓에 비서들의 입은 자기 절제의 미덕을 불문율로 해왔다. 개인 SNS에 선동적 문장들로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대통령 비서는 역사상 처음이다. 그것만으로도 ‘조국 정치’는 창조적 파괴의 효과를 봤다.

그의 발언은 일본이 아니라 내부를 겨냥한다.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졸지에 친일파가 됐다. 물론 국가 간 분쟁에서 정부가 잘 해결하도록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와대도 국민에게 힘을 모아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제 사회도 공감할 수 있는 논리를 정립하고 이를 갖고 우리 국민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다수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주장들을 동어반복적으로 되뇌면서 무조건 믿어라? 안 믿으면 친일파요 적이다? 의문의 일격으로 친일파로 몰린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선동에 깔려 있는 전체주의적 그림자가 더 위험해 보인다. 전체주의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는 교조적 인식에 터를 둔다. 모든 전체주의에는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들을 적이나 적의 첩자로 몰려는 새디즘이 자리한다. 거기엔 정치공학도 한몫한다. 그는 조지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 정치와 노이즈 마케팅을 충실히 실천한다. 친일 반일 프레임을 걸고 이를 비판할수록 ‘코끼리는 말하지 말라’는데 말하게 되는, 프레임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 칼럼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나랏일에 정치공학으로 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이 사안은 전쟁이나 정쟁이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은 협상으로 해결할 일이다. 정치공학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와 전략이 요구된다. 감정을 최악으로 만들어놓고 협상하는 것은 하수가 하는 일이다. 상대가 겁낼 우리의 무기는 묵묵히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에는 무리한 경제보복이 자유무역질서의 틀을 흔들고 세계 경제에 연쇄적 타격을 줄 것임을 알려야 한다. 그런 한편 지난 50여년간 한국 정부가 유지해온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는 성의를 보여 더 이상의 경제보복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죽기 살기로 한판 붙자는 식으로 달려드는 것이 누굴 이롭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베 정권에게는 울고 싶은데 빰 때려주는 꼴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G20 국가다. 지난 칼럼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은 내셔널리즘으로 성공한 나라가 아니라 글로벌리즘, 개방적 협력주의 덕에 성공한 나라다. 내셔널리즘을 이용해 굴기하려는 나라에 대해 내셔널리즘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과연 슬기로운 국정일까? 무엇이 지혜로운가를 따지는 데 느닷없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일본이 국가 간 신뢰와 국제법을 문제 삼는데 한국은 민족감정과 역사적 정의론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트랙을 뛰고 있는 것이다.

조 수석은 일제 강점기가 불법 지배임을 인정하느냐 여부가 이 사안의 본질이라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녁을 빗나간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괘씸하긴 하지만, 지금 쟁점은 그것이 아니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1항 “양국 및 양국민 간의 재산 및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조항과 이 합의의사록에 한국이 요구한 8개항 5조 강제징용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간의 한국 입장을 왜 뒤집는가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을 일제 식민지가 불법이고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본 개인은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역사적 정의론으로 답변한다면 김근식 교수 말대로 한일 협정을 무효화하겠다는 것인가라는 반문이 가능하다.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도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 청구권은 일괄 보상에 포함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이 외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법 자제의 원리(principle of judicial self-restraint)’, 즉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외교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신중 접근 원칙을 존중했는가의 문제와 별개로 정부는 인권을 국제법보다 앞세운 대법원 판결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 한국 입장을 바꾸지 않는 대책이 가능하다. 대법원 판결에 의한 채권을 정부가 양수하는 것 등 여러 현실적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지금 청와대가 머리를 싸매야 할 일은 이런 현실적 해법이다. 그런데 ‘죽창 들고 일본 본때 한번 보여주자!’는 선동이라니. 한·일 갈등으로 피해 보며 전전긍긍하는 현장 사람들의 피 말리는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부산의 야구장에 가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짜증 나는 야구 경기를 할 때 이제 좀 그만하라는 뜻으로 ‘쫌!’이라고 외친다. 조 수석에게 이를 들려주고 싶다. ‘쫌!’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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