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인 초고순도 불화수소의 생산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이 2011년 개발해 특허까지 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이 수출 규제 카드로 꺼내든 일본산 불화수소와 맞먹는 순도를 8년 전에 이미 우리 기술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획기적인 기술은 사장되고 말았다. 상용화하려면 수십억원에서 100억원까지 설비투자를 해야 했는데 그 부담을 감수할 만큼 판로가 확실치 않아서 투자를 접어야 했다. 이 기술의 납품처였을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외면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느 장관과 여당 의원은 그런 논리를 폈지만, 단견이다.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고 해외 거래처에 차질 없이 납품해야 하는 입장에선 생산체계의 안정성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이미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고품질의 일본산 불화수소가 있는데 단지 국산이란 이유로 생산 차질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애국적일지는 몰라도 글로벌 시대에 합리적이진 않다.

반도체 소재를 둘러싸고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이런 간극이 있었다. 그것을 메우고 접점을 만들어주는 건 정부의 몫이다. 중소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도록 안전장치를 갖춰주는 일, 대기업이 안정적인 일본산 대신 실험적인 국산에 손을 내밀도록 유인책을 제공하는 일을 산업정책이 했어야 했다. 역대 정부마다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말했지만 어떤 정부도 그 생태계를 만드는 실질적 조치에 나서지 않은 탓에 국산 기술을 갖고도 일본산에 의존하는 상황이 지속돼 왔고, 이는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공격하는 데 활용하는 무기가 됐다.

불화수소 중소기업의 특허가 사장된 전례에서 정부는 소재·부품 산업 육성책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에선 정부가 이런 기업을 도우려 해도 연구·개발(R&D) 외에는 지원할 명목이 마땅치 않다. 이 기업 대표는 “불화수소 말고도 소재·부품 분야에서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했다. 소재산업을 일으킬 많은 기술이 중소기업에 있는데 현실적 여건 탓에 살릴 수 없고 그래서 정부가 지원하려는데 마땅한 절차마저 없다면, 그 절차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어떻게 끝나든 정부는 소재산업 육성의 확실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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