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33) 황장엽 선생 느닷없이 내게 “우리 형제합시다”

만난 지 2개월여 만에 마음 문 열어… 이후 우리 집에서 생일상 마련, 매년 빠짐없이 축하예배 드려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왼쪽)가 2010년 황장엽 선생(가운데)의 마지막 생일날 방지일 목사와 함께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간절한 기대를 갖고 하용조 목사님뿐 아니라 여러 목사님께 황장엽 선생님을 방문해 기도해 주시고 전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김준곤 방지일 목사님을 비롯해 홍정길 김진홍 이철신 김상복 최일도 이수영 목사님, 김형석 이만열 교수님, 이영덕 전 총리 등을 모시고 황 선생님과 교제를 나눴고 축복기도를 해주시도록 부탁했다. 황 선생님 역시 한 번도 거부하지 않고 좋아하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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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선생님을 처음 만난 지 2개월여 후 선생님은 느닷없이 내게 “우리 형제 합시다” 하고 말했다. 나는 좀 뜻밖이라 부정도 긍정도 안 하고 미소만 지었다. 주님 안에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의식은 있었지만 사실 누구와도 형제나 자매를 맺어본 일이 없었다. ‘저분이 얼마나 외로우면 저런 말을 할까’ 싶어 내가 우선 위로를 드려야 신앙으로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으로 긍정했다. 그러나 그를 오빠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나를 신뢰해 주는 게 고마웠을 뿐이었다.

하루는 황 선생님 생신을 앞두고 탈북자동지회 홍순경 회장과 김성민 국장이 선생님께 의논을 드리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선생님께서 “생신이 다 뭐냐. 나는 안 한다”고 거듭 손사래 치더니, 문득 “정 그러면 주 선생네 집에서나 하면 할까”라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런 분의 생신 잔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걱정은 됐지만 못한다고 할 수가 없어 “네, 제가 조촐하게나마 준비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2010년 별세할 때까지 나는 예닐곱 차례 우리 집에서 그분 생신상을 차렸다. 탈북자동지회 임원 몇 분과 경호원 8명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정말 조촐한 생일상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꼭 빼놓지 않았던 게 생신 축하 예배였다.

선생님은 식사도 하루 한 끼만 드시고 약간의 견과류와 과일, 차 등의 간식을 드셨다. 체중이 41㎏에서 조금만 늘어나도 단식을 한다고 했다. 근신하고 절제하는 습관이 대단했고 일본에서 공부할 때는 누워서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앉아서 책상에 기대어 잠을 자고 그때부터 하루에 한 끼씩 드시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이상하게도 2010년엔 선생님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북한민주화동맹의 새 사무실에서 뷔페를 차린다고 하셨다. 다들 놀랄만한 일이었던 게 황 선생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나올 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사람을 많이 데려오라고 하셨지만 여러 사람에게 청하기 미안해 몇몇 분들께만 소식을 알렸다. 장영일 전 장로회신학대 총장님과 사모님, 이철신 이성희 목사님 등이 그 몇 분 중 하나였다. 그 외에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제자들 몇몇을 불렀다. 경호원들이 멋스럽게 방을 꾸며주기까지 한 그 생일파티가 황 선생님과의 마지막 작별파티가 될 줄은 몰랐다.

얼마 후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조사가 있는가 보다’ 하면서 한 일식집에서 만났다. 형사 두 명이 동행해 식사하며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에 갔던 적이 있습니까.” 나는 10년 전에 교환교수로 갔다 온 일이 있다고 답했다.

“황장엽 선생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나는 종교인으로서 황 선생님이 주체사상에 반대되는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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