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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문학스케치] 누울 자리

“나중에 합장해드릴까요?”… 어머니 앞에서 답변 머뭇거린 아버지, 그러라고 하셨어야죠


지난겨울 고향에 사는 고모부의 부음을 들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분이라 소식을 전하는 부모님도 담담한 말투였다. 고모부는 내게 특별한 분이었던지라 어수선한 일들 모두 제쳐두고 달려가야 했지만 곧장 떠나지는 못하고 출상 전날 밤 출발해 새벽에야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 이리 늦었냐는 사촌형제들의 다정한 타박을 들으며 운구차를 따라 장지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이십오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고모를 안장한 곳에 합장하리라는 거였다. 그러라는 유언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사촌형제들의 결정이라고 했다. 합장은 내 어린 시절에도 드물었지만 지금도 흔한 일은 아닌 터라 매장 절차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도착해 보니 고모의 봉분을 걷어낸 자리에 하관할 구덩이가 이미 파여 있었다. 그 일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은 오랜 시차를 두고 돌아가신 두 분이 결국 같은 자리에 눕게 된다는 게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거였다. 내 기억에 고모의 이른 영면에는 고모부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 아내를 살갑게 대하며 애틋하게 아끼는 좋은 남편은 못되었지만 못살게 굴고 군림하려는 나쁜 남편도 아니었다. 다만 고모가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싸구려 진통제로 견디는 걸 모른 척하지 않고 고모부가 좀 더 일찍 병원에 데려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서운함은 있었다. 그 서운함은 나만의 것은 아니어서 사촌형제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래전 일인 데다 그 시절 시골 사람들의 처사가 대체로 그러했기에 딱히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고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았다. 나 없는 세월을 이십오 년씩이나 착실하게 잘 살다 이제 오셨구려 하며 받아들일지, 나 먼저 보내놓고 무슨 낯으로 이제 와서 내 옆에 눕겠다는 거냐며 화를 낼지 알 수 없었다. 세밑답게 추위가 매서워서 지켜보는 이들 모두 한쪽에 피운 화톳불을 둘러싸고 몸을 녹였다. 합장이 끝나가고 있었다. 봉분에 잔디까지 입혔다. 그때 아버지가 나서더니 일꾼들에게 봉분이 너무 작다며 다시 해달라고 말했다. 합장했으니 봉분이라도 크게 해야겠다는 거였고 사촌형제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외숙부 말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추운 날 일이 끝나가는데 다시 해달라니 일꾼들 입장에서는 낭패였으련만 그이들도 실은 다 누구의 친척, 누구의 친구 하는 식으로 아는 사람들이라 불평하지 않고 잔디를 떼어낸 뒤 다시 봉분을 넓히고 돋우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거봐라 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하며 뽐내는 기색이 가득했다.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 내외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른들은 자식들이 든든하게 있으니 가는 길이 헛헛하지 않았을 테고 합장까지 했으니 얼마나 보기 좋냐며 으레 듣는 이 없는 칭찬을 했고, 그게 나 들으라는 말임을 알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조금 장난기가 생겨서 옆자리에 앉은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무례하게 들리지는 않도록 말을 골라가면서,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고모와 고모부처럼 합장해드릴까요 했다. 그리고 뒷좌석에 앉은 동네 어르신 내외께도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여쭈었다. 동네 어르신 내외는 껄껄껄 웃으면서 우리 죽은 뒤까지 걱정해주고 참말로 고맙네, 했지만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특히 노부인 쪽 얼굴이 노인 쪽보다 떨떠름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인 듯했다. 죽기라도 해야 이 지긋지긋한 인간하고 헤어질 텐데 죽어서조차 합장이라니. 흥 어디 자네만 그런가. 내 말이 그 말이네. 어머니와 아버지 역시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말을 돌렸지만 내가 더 채근하자 마지못해 우리 죽은 뒤에야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런 엉성한 대답에 숙이고 들어갈 내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또 이렇게 오금을 박듯 예, 그럼 어머니 아버지 합장해 드릴게요. 괜찮으시죠?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했더니 아버지가 당황하며 요새는 화장도 하고 수목장도 하고 어차피 썩어 없어질 몸 무슨 상관이겠냐, 우리는 그런 거 고집하지 않는다, 했고 어머니는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외로 틀어버렸다. 시내에 나갈 일이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을 떠났다. 헤어지기 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깐 합장해도 좋을 것 같다. 죽어서도 느이 어머니 옆에 누워야지. 나는 면박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그 말씀은 어머니 계신 자리에서 하셨어야죠. 늦었어요. 그러냐? 예.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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