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용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2차 수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특조위는 신속한 피해 구제에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결국 25년 전 제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예고된 비극’이었다.

기업은 유해성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제품을 출시했고, 사망자가 생겨난 이후엔 책임을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사태를 해결해야 할 환경부 직원은 기업을 향해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를 삭제하라”고 조언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특별조사위원회 소환을 무마해 주겠다며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최초 개발 당시 자료를 토대로 1990년대부터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재구성했다. 7개월간의 재수사 결과 SK케미칼·애경산업·환경부 관계자 등 34명이 법정에 서게 됐다. 세계 최초 기술이라는 광고와 함께 1994년부터 2011년까지 팔려나간 가습기살균제는 980만4852통이었지만 그로 인한 인명 피해는 너무도 컸다. 폐질환·천식 피해자는 6476명, 사망자는 1421명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유해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2016년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를 기소한 뒤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수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출시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대의 흡입독성 보고서, 유공 연구원의 연구노트를 압수 분석한 결과 제품 개발 단계부터의 과실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1994년 유공은 ‘가습기메이트’ 출시에 앞서 원료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의 ‘흡입독성’ 동물 실험을 서울대 교수팀에 의뢰했다. 기간은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였다. 서울대의 보고서 회신은 1995년 7월이었다. 보고서의 결론은 “실험 대상 쥐들에게 병변이 발생하고 백혈구 수치가 감소돼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품은 실험 결과가 나오기 1년 전인 1994년 11월 판매되기 시작했다.

SK케미칼은 2000년 가습기메이트 사업을 인수해 2002년부터 애경산업과 제조·판매 업무를 재개했다. 이때에도 안전성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고객들이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한 것 아니냐”고 문의해도 회사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SK 직원들이 피부독성, 안구독성 등의 정보를 일부 은폐하거나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건강 피해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이들 중에는 유해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공급한 SK케미칼 전 직원 최모씨 등이 있다. 이 원료는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1차 수사를 진행했던 당시 유해성이 확인됐다.

이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책임자들은 당시 사법처리됐지만 SK 직원들은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을 뿐 용도는 몰랐다”며 기소를 피했었다.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기업들의 증거인멸에 협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는 2017년부터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 가습기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 보고서 등을 넘겨줘 불구속 기소됐다. 양모 전 국회의원 보좌관은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의 소환을 무마해 주겠다며 애경산업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구속 기소됐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2011년 4~5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 산모 7명과 40대 남성 1명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입원한 뒤 4명이 숨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 유발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족들은 2012년 8월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 10곳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역학조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수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보건 당국은 폐손상 조사위원회를 결성, 원인미상의 폐질환 신고 사례 300건을 대상으로 질병과 가습기살균제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신고가 접수된 361건 중 127건은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피해가 확실시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본격적인 검찰 수사는 2016년 1월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제조사인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대표와 관계자 21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가운데 신현우(70)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이 확정됐다.

이번 검찰 수사는 1차 수사 때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았던 CMIT·MIT 성분의 인체 유해성이 뒤늦게 밝혀지며 재개됐다. 2016년 2월부터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가해 기업 임원들이 대거 고발됐지만 증거불충분 상태였다. 지난해 11월 환경부가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며 수사가 재개됐다.

정부가 추산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19일 기준으로 6476명이다. 이 가운데 1421명이 사망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은영(42)씨는 “책임자 처벌 없이 수사가 끝날까봐 불안한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견뎌왔다”며 “SK케미칼은 핵심 기업인데도 아직까지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사과가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재수사 결과를 환영한다”고 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2016년 첫 수사에 비해 CMIT·MIT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과실이 명백히 규명됐다”며 “SK케미칼의 PHMG 가습기살균제 원료 공급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물은 점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특조위는 다만 옥시 영국 본사와 외국인 임직원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최 부위원장은 “관련 기업들이 적극적인 피해자 배상·보상에 나서지 않아 피해자들은 더욱 고통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허경구 구승은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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