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에 갑자기 식량지원 수용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한국이 WFP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공하려는 쌀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북측 실무자가 꺼낸 말이지만 정부 차원의 지침 없이 이런 입장이 나오긴 어렵다. 더구나 8월에 열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거부 이유로 들었다. 북한이 최근 이 훈련을 겨냥해 쏟아낸 비난 발언의 연장선에 있다. 인도적 견지에서 진행해온 대북 쌀 수송 준비절차는 당분간 중단될 처지에 놓였다.

북한이 WFP 식량지원을 거부한 전례가 없던 터라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상황은 이미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톱다운 방식의 남·북·미 비핵화 협상은 큰 틀의 합의가 이행단계에서 어깃장에 걸려 흔들리는 일이 반복돼 왔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지루했던 실무협상이 그랬고,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달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소멸 위기의 대화 모멘텀을 되살리기에 충분할 만큼 극적이었는데, 이후 북한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어깃장에 가까운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연례적인 한·미 훈련을 비난하며 비핵화 실무협상과 연계했고 미처 완성되지 않은 핵무기 탑재용 신형 잠수함을 공개하더니 이번엔 식량지원 거부 움직임을 구체화했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판문점 회동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주 안에 실무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예상했던 시점이 지났는데도 실무협상의 가시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준비되면 만나게 될 것”이란 말로 바뀌었다. 북한과 미국이 긍정적 서신을 주고받았다지만 아직 마주앉을 만큼 조율되진 않은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는 중이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강경한 메시지를 던지는 거라면 북한은 오판을 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말해주듯 북핵 이슈는 전략이나 전술로 흐름이 바뀔 단계를 넘어섰다. 완전한 비핵화란 목표는 흔들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위해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서는 것이 북한의 경제 건설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훨씬 효율적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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