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옛날 우리 선조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 ‘동국세시기’에는 선비들의 여름 나기로 탁족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탁족은 강물이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의 경치를 감상하는 피서법이다. 시린 계곡물이 열기를 내리고 흐르는 물살이 발바닥을 자극해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여름 나기 비법으로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성행했다. 주로 남산과 북한산 계곡에서 탁족을 많이 했고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세검정 일대였다고 한다.

지난 주말,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손가락 하나 꼼짝 하기 싫을 때였다. 요리 프로에서 복달임 음식으로 닭칼국수 만드는 걸 보게 되었다. 뽀얀 국물에 탱탱한 면발, 잘게 찢은 닭살을 올린 칼국수는 몹시 유혹적이었다. 뜨끈한 닭칼국수 한 사발 먹고 싶은 생각이 구름처럼 일었다. 나는 그길로 닭 한 마리를 사다 요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가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복더위에 가스 불 앞에 서 있자니 몸보신도 하기 전에 쓰러질 판이었다. 그래도 참고 사십분 정도 끓이니 뽀얀 국물이 우러나왔다. 남편이 닭살 바르기는 자기가 하겠다며 나섰다. 닭살을 바를 동안 고명으로 올릴 호박을 볶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마침내 화면에서 봤던 비주얼과 비슷한 닭칼국수가 완성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맛은 그저 그랬다. 레시피대로 했는데도 무언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맛에 대한 불평 대신 후루룩 쩝쩝거리며 각자의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동네 개천으로 산책을 나섰다. 저녁 어스름이 깔린 천변에는 꽤 많은 사람이 거닐고 있었다. 산책로 계단참에 앉아 물속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도 신발을 벗고 나란히 발을 담갔다. 물이 발에 닿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온 몸으로 퍼졌다.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이러고 있으니 행복이 별건가 싶기도 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먼 옛날 선비들이 즐겼던 탁족도 의관 정제에 갇혀 좀처럼 버선 벗을 일 없었을 그들의 소확행 아니었을까.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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