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일본에서 ‘한류의 성지’로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 상가 모습.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신오쿠보의 ‘한류 백화점’이라고 쓰인 건물 간판에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교차해 있다.

지난 24일 ‘한류의 성지’라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 일본에 온 지 16년째인 김병규씨가 한국 음식점을 돌며 막걸리를 납품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주는 평소의 반도 못 팔았다”며 “막걸리를 납품하니까 전날 장사가 어땠는지 바로 안다. 주문량이 달라지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 친구들은 오지만 나이 든 사람은 안 온다”며 “지난주엔 한 집마다 예약이 5~6개씩 취소됐다고 한다. 분위기 안 좋으니까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오쿠보는 일본의 대표적 한인타운이다. 한국 연예인들의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있고, 트와이스나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길거리에 흐른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인 고객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면서 이곳의 한국 상인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장사가 안 된다’는 하소연부터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본때를 보여달라’는 바람과 갈등 장기화로 발생할 차별, 자녀교육이나 비자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뒤섞였다.

김씨는 갈등이 빨리 해결되면 좋겠다면서도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응원한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야무야 넘기면 안 된다”면서 ”아베는 자기가 불리할 때면 매번 우익을 건드려 한국을 괴롭히고는 빠져나간다”며 “이번에 힘을 보여줘야 다음부턴 못 그런다”고 말했다.

신오쿠보의 한국 화장품점에서 일하는 황모(60)씨의 생각도 같았다. 일본생활만 40년 됐다는 그는 “아베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면서 “장사가 좀 안 돼도 이번엔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화장품 가게와 DVD방을 운영하는 정모(46)씨는 이날 오후 5시쯤 화장품 가게 셔터를 내렸다. 장사가 잘 안돼 평소보다 1시간 빨리 문을 닫은 것이다. 정씨는 한·일 갈등으로 자녀들이 피해를 볼까 걱정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갔을 때 일본 역사 선생이 한국 애들에게 ‘다케시마가 한국 거냐 일본 거냐’고 물어 한국 엄마들이 난리였다”며 “그때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런 기억이 있으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국 음식점 직원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비자 얘기도 나오니까 개인적으로 걱정은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선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강화 등 추가 조치도 거론된다.

오후 7시를 넘어서자 신오쿠보 거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늘었다. 한 일본인 여성은 트와이스의 ‘팬시(Fancy)’ 음악에 맞춰 몸짓을 하며 걸어가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중이던 유학생 윤인섭(23)씨는 “최근 신오쿠보를 찾는 사람이 줄긴 한 것 같다”며 “요즘 오는 사람들은 그냥 이곳을 좋아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특히 젊은 일본 청년들은 한·일 갈등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와다 에이스케(34)씨는 “정치와 문화는 별개니까 한국이 싫다거나 하는 건 없다”며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TV에서 보긴 했는데 별로 기분 나쁘진 않다”고 말했다.

다만 부모 세대는 다르다. 25일 K팝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한국에 간다는 야마오 나나(21)씨는 부모로부터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부모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콘서트가 너무 보고 싶어 가기로 했다”며 “나는 한국이 좋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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