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앞 골목에서 매일 저녁 같은 사람과 마주쳤다. 서너 달 전부터 마주쳤지만 가끔 눈인사를 했을 뿐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게 앳되어 보이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와 영상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는 대체로 여성이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일 때도 있었고 청년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여성일 때도 있었다. 이어폰을 꽂지 않고 통화를 하는 것을 보니 그 역시 타인이 자신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영어를 사용했더라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언어였다. 영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그 언어는 외계인의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인지 그 언어는 듣는 사람인 내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부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조르는 것 같기도 했으며 때로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나는 목에 수건을 두른 그가 집 근처 편의점 앞 간이테이블에서 동료들과 함께 음료를 마시며 한국인 관리자의 지시를 듣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다. 그는 우리 집 다음 골목에 있는 반지하 집에 살았다. 나는 그를 비롯한 외국인 청년들이 그 집을 드나드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합숙을 하므로 집 안에서는 전화통화를 할 수 없는 것이리라.

그런 그가 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크게 놀랐다. 그는 자신이 늘 앉는, 전봇대 앞에 놓인 벽돌 위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우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그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스마트폰 안의 누군가도 우는 것 같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나 역시 지구 저편에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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