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39) 어머니들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여성들이 맡은 일 많지만 개교회주의 갇혀 의식·세계관 좁아져… 초교파적 여성 기도모임으로 깨어나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뒷줄 왼쪽 두 번째)가 2004년 초교파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장영일 장로회신학대 총장은 우리 집에서 진행한 탈북자 모임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곤 했다. 총장 사모님도 오랫동안 탈북자들을 위한 봉사에 정성을 쏟으시며 새생활체험학교를 할 때면 탈북자 아이들을 업어 주고 돌봐 주셨다. 두 분은 내게 큰 힘이 돼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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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장로회신학대가 학생들에게 통일을 향한 꿈을 준비하게 하고 교단도 협력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번은 탈북자를 돕던 노영상(윤리학) 교수와 장 총장, 교단 북한선교위원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남북한평화신학연구소를 만들기로 했다. 꿈에 그리던 일 중 하나를 이룰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북자 종합회관을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부받은 돈 4000만원과 통일 선교를 위해 쓰려고 작정했던 나의 헌금을 합쳐 장 총장께 드렸다. 학교와 학생들이 북한 사역의 마중물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소에서는 지금도 통일에 관한 연구 논문과 관련 서적을 꾸준히 출간한다. 매주 화요일 통일 선교를 준비하는 장로 100여명이 모여 강의와 토의를 나눈다.

일상 속에서 탈북자만큼 깊이 관심을 뒀던 게 우리 사회의 여성이었다. 한국교회에는 여성단체도 많고 교회마다 여성들이 맡은 일도 많다. 하지만 개교회주의에 갇힌 채 여성들의 의식과 세계관은 점점 좁아졌다.

2003년 9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딸인 앤 그레이엄 로츠 여사가 내한했다. 로츠 여사는 이틀 동안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기독교인 여성들에게 영적 각성을 일으켜 줬다. 대회 후 평가회를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깨어 일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큰 공감을 얻었다. 평가회 이후 다양한 후속 모임이 진행됐고 각 교파나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차원에서 때와 상황에 따라 기도할 수 있는 모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라를 위한 기도회이니 이름을 ‘에스더 기도회’라 정하고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한편으론 일본의 식민 지배를 이겨내고 눈물과 피를 흘리며 조국을 되찾는 동안 기독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함께 뜻을 모은 이들은 2005년 1월 서울 종로구 여전도회관에 모여 한국기독여성모임(KCWA)이란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1907년 평양에서 성령이 휩쓴 회개운동이 일어난 것은 몇몇 선교사들이 성경공부를 하며 기도할 때 죄를 자복할 마음이 생겨 회개 기도를 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여제자들은 세상의 화려함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귀부인으로 머물러 있지 말고 통회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모임에선 회개 기도와 북한을 위한 중보기도 운동, 성결하고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자는 의식개혁 운동, 성경공부 운동이 제안됐다. 이후 종교교회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연동교회 등에서 모임을 가지며 1년에 한두 번은 24시간 금식기도회를 열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의 자녀를 위해 울라’ 등의 제목으로 나라를 내 자녀처럼 품으며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어머니들은 교회를 깨우고 국가 지도자들을 깨우는 처절한 기도자이자 신앙의 어머니들이다. 이 어머니들의 기도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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