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둘러싼 국제관계는 역사 갈등이 정치 갈등을
경제 갈등이 안보 갈등을 촉발하는 ‘연동형 모순’ 상태
현 상황은 한·일 정치가 충돌해 경제와 안보를 위태롭게 한 것
갈등의 연쇄 전이 막으려면 연립방정식 풀듯 접근해야


일본이 한국의 허(虛)를 찔렀다. 사실은 ‘강경·보수·우익’을 대변하는 아베의 ‘정치’가 한국 ‘경제’의 취약한 혈에 칼을 들이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글로벌 상품 사슬로 연결된 일본 기업이나 한국 관광객의 덕을 보는 지자체도 아프다. 그래서 자충수란 안팎의 비판이 높아졌다. ‘강경·진보·민족’을 표방하는 문재인정부의 청와대가 정면으로 맞받아 일본의 ‘안보’에 칼을 겨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다. 후련한 복수일까. 북핵이 코앞의 위협인데 한·미동맹을 약화하는 자충수라는 안팎의 비난이 넘친다.

상대의 약점에 칼을 꽂고 서로 피를 흘리는 형국, 누군가 먼저 무릎 꿇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치킨게임이다. 이런 갈등을 풀려면 정확하게 맥을 짚어야 하는데, 요체는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삼자관계(triad)로 인수(因數)분해하는 것. 내 친구의 친구와 내가 친하면 삼자관계는 안정적이다. 내 친구의 적과 내가 싸워도 그렇다. 그런데 친구의 친구와 내가 싸우거나 친구의 적과 내가 가까워지면, 나와 친구의 관계도 불안정해진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관계는 한·중·일, 한·미·일, 남·북·중, 남·북·일, 남·북·미, 미·중·일 간에 불안정한 삼자관계로 가득 채워진 모순덩어리라는 점이 문제다. 더 고약한 것은 역사, 정치·군사, 경제로 층을 나누면 한 층의 갈등이 다른 층의 갈등을 촉발하는 ‘층간 연동형 모순’이란 사실이다.

가장 바닥에는 역사적 관계, 즉 과거의 기억이 깔려 있다. 북핵 위협에 맞선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도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역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면 갑자기 느슨해진다. 제국주의 침략의 가해자로 되살아난 일본에 맞서서 남한과 북한은 형제로, 난징학살의 기억을 가진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해준 살가운 이웃으로 소환된다. 그러나 사드 사태 때 보듯, 중국은 소위 ‘조공국 조선’에 부임한 ‘중화 총독’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연상시키는 역사적 DNA를 가졌다.

정치·군사적 관계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휴전선을 경계로 공산 위협에 맞서 한·미·일을 강하게 결속시켰던 냉전 구조는 안정적이었다. 1960년대 케네디와 존슨행정부는 한·일이 역사적 층위의 악연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경제협력과 안보동맹이 가능하도록 한일협정의 판을 깔았다. 애치슨라인에서 제외되었다가 한국전쟁 후 미국의 핵우산 안으로 포섭된 한국의 안보에 일정 부분 무임승차하면서 일본은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고, 그 대가로 6억 달러의 대일 청구권 자금 지급에 동의했다.

그러나 탈냉전·G2 시대, 도널드 트럼프는 자국의 핵심이익 보호가 우선이다. 대중국 경제봉쇄를 시작했고 김정은과의 일회성 판문점 회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최대 관심은 재선과 북핵으로부터 미국을 지키는 것이지, 한국의 안보가 아니다. 최근 방한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군 주둔 비용으로 그동안 낸 분담금의 5배인 6조원을 청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레버리지로 한·일 갈등을 풀어보려는 청와대의 시도가 약발이 먹히지 않는 이유다.

경제적 관계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중국은 2017년 기준 미국을 대상으로 무려 343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는데, 이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등에 올라타 510억 달러 무역흑자를 낸 것은 한국이다. 그러나 그 절반 이상인 273억 달러를 일본에 바친다. 수입품 대부분이 핵심소재와 중간재여서 공급이 끊기면 다자간 무역의 위계적 구조로 인해 연쇄적 파급 효과가 증폭된다. 더구나 한국의 전체 GDP에서 수입과 수출의 합이 차지하는 비율, 즉 무역의존도는 68.7%로 5000만 인구 규모 국가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28.1%에 불과해 세계 최저다. 한마디로 치킨게임으로 입을 피해가 한국이 훨씬 큰 구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층위로의 전이효과다. 한·일 갈등은 한·미 군사동맹을 약화시켜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 요구액을 높이고, 북핵을 둘러싼 북한의 목소리를 강화시키며, 러시아와 중국이 한반도를 넘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역사갈등이 경제적 피해를 넘어 안보위기로 증폭되는 구조다. 대격변의 시기, 한·일의 ‘정치’가 충돌해 양국의 ‘경제’와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현 상황에서 다차원 연립방정식을 푸는 해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차원 해법만 보인다. 다른 목소리를 모두 ‘친일파’ 논리로 몰아붙인 청와대 수석, 전문가 목소리가 사라진 외교, ‘축적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기업 탓만 하는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도 대북관계 개선에만 올인하는 통일정책 등. 제발 각 분야 전문가들 조언을 경청하여 연립방정식으로 풀으시라, 문 대통령이여. 급소를 찔렸는데 개항기 복합적 국제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위정척사파나 고종의 뒤를 따르면 나라가 위태롭소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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