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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주화] 아빠가 잠든 사이


여름방학 직전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 초등학교 2학년 국어 시험 문제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으르렁 드르렁/드르르르 푸우-// 아버지 콧속에서 사자 한 마리/울부짖고 있다.// 생쥐처럼 살금살금/양말을 벗겨 드렸다.’ 시인 김은영의 동시 ‘잠자는 사자’에 달린 문제였다. “주무시는 아버지께 아이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알맞은 것을 두 가지 고르시오.”

문항의 선택지로 ‘①고마운 마음 ②쓸쓸한 마음 ③부끄러운 마음 ④안타까운 마음 ⑤화가 나는 마음’이 주어졌다. 무엇이 정답일까. 답은 ①과 ④번.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가 고맙고, 그렇게 일하다 보니 피곤할 테니 안쓰러운 마음을 갖는 것은 도리상 맞다. 하지만 그런 ‘정답’의 마음을 가진 자녀들이 많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써낸 답은 다양했다. 코를 크게 고는 아버지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아버지와 잘 놀지 못한 아이는 쓸쓸함을 느꼈고 화가 난다고도 했다. 담임교사는 고민 끝에 이 문제를 모두 맞는 걸로 처리했다고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잠자는 아버지에게 갖는 감정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가 보내는 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평일 만나고 헤어질 때 애정 담뿍 담긴 말을 하고 꼭 안아주면 어떨까. 자녀가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고 아버지에 대해 호감을 가질 것이다. 평소 아버지의 퇴근이 늦다면 주말 반나절 아이와 신나게 논다면 아이는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이번엔 이 문제를 엄마들이 풀게 됐다. 한 엄마가 모바일 단체 대화방에 이 문제를 올린 것이다. 엄마들이 다 답을 올리진 않았지만 가장 먼저 나온 답은 ⑤번이었다. 남편이 코를 골면서 자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다른 엄마도 즉시 동의했다. 대부분 남편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사정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평소 집안일을 도와주기 바라거나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바라는 마음이 반영됐을 것이다. 부부가 일상에서 좋은 감정을 쌓는다면 아내는 잠자는 남편에게 고맙거나 안타까운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상담가 게리 채프먼은 저서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부부들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언어에 대해 조언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스킨십, 봉사 5가지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제1의 사랑의 언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언어를 파악하고 구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내 배우자는 어떤 언어를 가장 선호하는가. “당신이 수고가 많아. 고마워”라는 인정의 말을 가장 좋아할 수도 있고 가끔 산책하거나 차를 마시며 대화 나누는 걸 바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음식 준비나 청소 같은 봉사를 원할 수도 있다.

사실 코를 골며 잠을 자는 건 피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잠든 사이에 가족 누군가가 화가 난다면 그건 좋지 않은 신호다. 문득 엄마가 자는 가상의 동시 ‘잠자는 여우’를 주고 아이와 남편에게 같은 문제를 낸다면 어떤 답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나 역시 출근을 하다 보니 평소 가족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주말에 내가 코 골며 자면 아이는 나에게 심통이 나고 남편은 도끼눈을 뜰지 모른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0%가 가족과 함께 살지만 이 중 36.8%는 가족과의 대화 시간이 하루 20분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가족과 마주칠 시간이 없어서”(39.9%)가 가장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이 다 모이는 휴일에 낮잠을 잔다면 그 뒤통수가 예쁘게 보이긴 어려울 테다. 휴가철이다. 가족들과 모처럼 느긋한 시간을 가질 기회다. 대체로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재미있게 놀아주길 바랄 것이다. 부부는 배우자에게 따뜻한 대화나 애정 표현을 기대할 것이다. 평소 가족들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면 좋겠다.

강주화 온라인뉴스부 차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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