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튜브’가 남긴 상흔은 깊었다. 최근 만난 기업 임원은 “평생 몸 바쳐 일했는데 굳이 왜 그렇게 살았나 싶다”고 했다. 자신이 못난 부모가 된 것 같다는 지인도 있었다. 인터넷 육아 카페에는 “자녀를 유튜브 스타로 키우겠다”는 글이 쇄도했다. 실제로 유튜브에는 허술한 구성의 키즈 영상들이 갑자기 여러 개 올라왔다. “영상을 찍고 싶은데 아이가 말을 잘 안 들어요. 보람이처럼 얌전하게 놀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웃지 못할 인터넷 글도 봤다. 6살 이보람양이 장난감을 소개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어보고, 아빠와 노는 일상은 모두에게 95억원짜리 자괴감이 됐다.

다들 이런 생각일 터다. 우리 아이와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보람이가 100억원 가까운 돈을 벌었다는 것이 부럽고, 배가 아프다. 범인(凡人)이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할 큰돈을 6살짜리가 ‘놀면서’ 버는 현실, 부조리하지 않은가. 보람튜브는 3개의 채널을 운영하는데 구독자는 총 3500만명에 달한다. 월 광고수익은 최대 19억원으로 추정된다.

사실 보람튜브는 언어의 장벽이 없고, 반복재생이 잦으며 장난감 산업을 아우르는 키즈채널의 성장 가능성을 일찍 깨닫고 길을 개척해 성공한 경우다. 보람튜브 운영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10분 내외의 영상을 제작하는 데 작가와 PD, 편집팀 등 5명 이상이 협력하고 제작기간은 평균 4~5일이라고 밝혔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보람양의 부모는 딸과 더 많이 놀아줄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보람튜브 사태는 단순한 아동 유튜버의 성공신화가 아니다. 아동학대 논란이나 애태크(아이+재테크) 열풍을 걷어내면 혁신에 생소한 대중이 새로운 흐름을 접했을 때 보이는 반응으로도 볼 수 있다. 누군가 “당신도 시대의 변화를 빨리 파악하고 준비했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는 시대다.

그래도 찝찝한 뒷맛은 남는다. 혁신산업 분야에서 양극화가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취재할 당시 의아했던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기업 대표 대부분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 경험이 있으며 유려한 직장을 다닌 경력이 많았다. 깊이 있는 지식과 생각을 교류하는 환경에서 양질의 인맥을 쌓고, 전문성을 다진 다음 자신만의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실패해도 큰 타격이 없다. 그래서 더 많이 실패하며 성공의 경험치를 쌓는다. 스타트업 성공률이 1% 미만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있는 집, 배운 자식’들의 대박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비결이다.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주최한 포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안상훈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상위 1% 부모 밑에서 혁신가가 나올 확률이 소득 50% 이하에서 나올 확률의 10배나 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혁신가)을 잃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그는 “유복하지 않은 자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격차를 줄이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혁신과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혁신과 포용은 별개 목표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따지면 자수성가에 성공한 보람튜브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삶에서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보람튜브처럼 개인이 영감을 현실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인도의 농업 크라우드 소싱인 ‘허니비네트워크’가 좋은 예다. 이 단체는 전문가가 농촌을 직접 방문해 농부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특허 등록을 지원한다. 허니비네트워크를 통해 한 과부가 직접 만들어 쓰던 식물성 살충제가 상용화됐고, 그녀는 떼돈을 벌게 됐다.

고용안정성, 임금 등 전통적인 노동환경이 나날이 척박해질수록 유튜브를 포함한 새로운 혁신 산업 분야는 늘어날 것이다. 정부나 단체가 앞장서서 평범한 사람들이 혁신에 뛰어들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사업 발굴, 지원 프로그램이야 수십개가 넘지만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다. 새로운 사업자가 진입하기 참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털어놨다. 아까운 세금만 우후죽순 쏟아부으며 말로만 ‘혁신성장’할 게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박세환 정치부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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