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소모적 정쟁으로 파행 거듭하는 바람에 입법 성적표 참담해
민심 온전히 반영되도록 공직선거법 개정하고 과도한 특권 과감히 내려 놓길

유권자들이 지속적으로 압박해야 국회 바뀔 수 있어


맡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처우는 최상급인 직업을 고르라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단연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제몫을 하는 의원들도 있겠지만 할 일은 안하고 대접만 받으려는 밉상 의원들이 적지 않아 보여서다. 야당은 걸핏하면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여당은 그런 야당을 포용하고 설득해 성과를 내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젬병이다. 의원들은 지도부 눈치를 보며 정쟁의 최전선에 서서 갈등을 부채질한다. 이러니 한시가 급한 민생 법안들은 국회 서랍에서 낮잠자기 일쑤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때가 되면 꼬박꼬박 거액의 세비(월급)를 챙기고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든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어제오늘의 모습이 아니지만 이번 20대 국회는 특히 심하다. 소모적 정쟁에 갇혀 임시국회가 아예 열리지 못하거나 열려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4월 말 이후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는 바람에 국회는 장기간 파행됐다. 국회가 열리지 못하자 주52시간 근로제 확대 시행에 따른 제도 개선, 최저임금법 보완 등 시급한 민생 법안들은 발목이 잡혔다. 미세먼지 대응과 산불예방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도 세 달 가까이 표류했다. 미·중 무역 갈등, 반도체 등 주력 업종의 침체, 일본의 경제 보복, 북의 미사일 도발 등 현안이 쏟아지는데도 국회는 없었다. 인사청문회와 안보현안 관련 질의를 위해 지난달 초 일부 상임위원회가 잠깐 열렸지만 국회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여야는 지난 29일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고 1일 추경 예산안과 일본 경제보복 철회 결의안 등을 처리할 본회의를 열었지만적기를 놓친 뒷북이었다.

이번 국회 성적표는 참담하다. 의안 본회의 처리율이 지난달까지 28.8%에 불과했다. 임기가 8개월 남짓 남았지만 의원들 마음은 이미 내년 4월 총선에 쏠려 있어 역대 최저였던 19대 국회(42.8%)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본연의 임무를 팽개치고도 자리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으니, 이런 꿈 같은 직장이 또 어디 있을까. 사실상 파업을 한 셈이니 다른 직장처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임기 중에도 투표를 통해 의원직을 박탈하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게 이상할 게 없다.

무능하고 부패한 의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기틀이 바로 서고 국민들의 삶이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의원, 국가와 국민은 어떻게 되든 당리당략에 급급한 정당은 유권자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민심(정당 지지율)이 의석 수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게 정치 개혁의 시작이다.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을 덜어내는 것도 핵심 과제다. 특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군림하는 국회가 아닌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가 열릴 수 있다. 우리 의원들은 외국 의원과 비교해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세비로 불리는 보수는 각종 수당,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등을 합쳐 연봉 1억5000만원이 넘는다.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의 2~3배 정도인데 우리는 4배가 넘는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고, 입법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도 세비는 꼬박꼬박 나온다. 세금으로 급여가 지급되고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보좌진이 9명 배정되고, 그 자리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것도 엄청난 특권이다. 의원회관 내 개인 사무실 운영비, 차량유지비, 정책홍보·정책자료 발간 및 발송료 등은 국고로 지원된다. 또 연간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해 쓸 수 있다. 그밖에도 공항 귀빈실 이용, 해외 출장 시 비즈니스석 항공권 배정, 연간 두 차례 해외시찰 지원 등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행정부를 감시·견제하고 입법 활동을 제대로 하라고 부여한 권한은 보장돼야겠지만 사익 추구의 수단이 되거나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지나친 특권은 내려놓는 게 마땅하다. 회기 중에는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도 개인 비리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선거법 개정이나 의원 특권 축소 권한을 의원들이 쥐고 있다는 것. 국민들이 아무리 원해도 의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그들이 과연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의원들의 후진적 행태에 신물이 나지만 그렇다고 국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행정부, 사법부와 함께 국가를 지탱하는 삼권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양식있는 의원들이 국회 개혁을 위해 뜻과 지혜를 모으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국민들도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당과 의원들을 계속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바뀐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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