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1) 나는 고향이 평양인 탈북자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과 학교… 북한 선교와 교회의 역사 배어 있어

유대열 서울 본향교회 목사가 지난 1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았다. 유 목사는 평소에도 가끔 고향 생각이 날 때면 이곳을 찾는다.

나는 북한에서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동포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목사다.

얼마 전, 북한 동포들의 구원과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목사님으로부터 귀한 책 한 권을 받았다. ‘북한교회 사진명감’(北韓敎會 寫眞名鑑)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교회가 북한교회의 재건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수년 동안 힘을 모아 만들었다. 6·25전쟁 이전까지 북한에 존재했던 교회 3000개를 발굴해 내력과 사진을 수록했다.

평양에 있던 교회들을 하나하나 기록한 부분의 맨 뒤에 무명(無名)교회 두 곳이 기록돼 있다. 그중 한 교회에 이런 질문이 있다. ‘대동문 옆으로 멀리 보이는 교회는 어느 교회인가.’ ‘평양 사람은 대답하라’. 평양 대동강변의 대동문이 찍힌 사진인데 6·25전쟁 당시 국군이 평양을 탈환했던 날 종군 사진기자가 찍은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오른쪽 뒤편으로 한 교회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 교회가 장대현교회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향이 평양인 탈북자다. 초등학교는 대동문인민학교를 나왔다. 대동문 옆에 있는 학교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대동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술래잡기했다.

중학교는 바로 옆에 있는 련광고등중학교를 다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모란봉에서 김일성광장으로 이어지는 평양의 중심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를 건너면 큰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위에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이 있다. 그 언덕을 장대재 언덕이라 하는데 장대현교회가 있던 자리다. 나는 학창시절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친구들과 놀곤 했다. 장대현교회 터가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셈이다.

탈북한 뒤 1997년 한국으로 와 신학교에 다니며 북한선교에 대한 꿈을 안고 북한교회사 공부를 한 적이 있다. 북한교회 자료들을 연구하던 중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다닌 대동문인민학교와 련광고등중학교 자리에 마포삼열(새뮤얼 A 모펫) 선교사의 사택과 평양신학교가 있었다는 점이다.

마포삼열 목사는 평양신학교와 장대현교회를 설립한 분이다. 당시 난 매일 새벽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대한 동상이 있는 만수대언덕에 올라 교인들이 새벽예배 드리듯이 절을 하곤 했다. 그곳이 평양신학교 자리였다니 놀라웠다.

아버지는 인민군 군관(장교)이었다. 우리 가족은 3~4년에 한 번씩 이사해야 했다. 내겐 형님 두 분과 여동생 둘이 있는데 5남매 모두 출생지와 고향이 서로 다를 정도였다. 중학생 때부터 군복무 때까지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돌이켜보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놀던 곳, 살았던 곳뿐 아니라 다니던 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북한선교와 교회의 역사가 진하게 배어있는 곳들이었다. 이사를 가는 곳마다 정이 들었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참으로 신비하고 놀랍다. 하나님은 북한 선교와 교회 재건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시고 인도하셨다. 나는 이제 겨우 그 뜻을 알게 됐다.

약력=1961년, 평양 출생. 조선로동당 국제관계대학 및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 중국 베이징외국어대 수료.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 공작원, 평안남도 S시 행정경제위원회 지도원 역임. 1994년 탈북해 1997년 한국 입국. 합동신학대학원대 졸업, 여명학교 설립, 남포교회 부목사 역임, 하나로교회 개척.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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