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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지호일]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조국

대일항전 총대 메는 건 직업적 정치인의 길…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는 주장은 허영심일 뿐


‘논쟁적 비서’ 조국 전 민정수석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왔다. 나와서는 더욱 대중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이미 예약해 둔 법무부 장관 자리로 가기 전 임시 민간인 신분일 때 할 말은 다해야겠다는 듯, 더욱 거리낌 없이 글을 쏟아내는 중이다. 역사상 조 전 수석만큼 정치적 이슈에 목청을 돋우며, 정치적 공방의 중심에 기꺼이 뛰어든 대통령 참모는 없었다. “저를 향해 격렬한 비난과 신랄한 야유를 보내온 일부 야당과 언론에 존중의 의사를 표한다”며 가시 넣은 퇴임사를 남길 정도니, 자기 정당화 능력이랄까, ‘미움받을 용기’만은 탁월한 것 같다.

그는 일본의 경제 보복 국면이 시작되자 여론의 전장 선봉에 섰다. ‘죽창가’로 포문을 열고, ‘매국’ ‘이적’ ‘친일’을 꺼내 휘두르며 돌진했다. 그런데 그가 겨눈 곳은 일본이 아니라 국내, 그것도 비난과 야유를 보내는 보수 정치권과 언론이다. 야당에서는 “국민 편가르기에 치를 떨 지경”이라는 분노의 논평이 이어졌지만, 이런 반응 및 파장 역시 조 전 수석의 노림수였을 수 있다.

조 전 수석의 발언은 “일본과 끝까지 싸워보자”는 선동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메시지의 위력은 상당했다. 정권 차원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 반등의 전기로 만들어 버리고, 정부의 외교적 실책 부분도 슬쩍 물타기 하는 효과를 낸 것은 그가 던진 ‘친일 프레임’이 먹힌 결과였다.

이는 그가 지사적 의분으로 총대 메길 자처했다기보다는 정권 차원에서 명시적·암묵적으로 총대를 쥐여 줬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양정철 원장이 이끄는 민주연구원의 자료에 ‘한·일 갈등이 총선에 긍정적’이란 분석이 담긴 것과 대통령의 ‘분신’ 조 전 수석이 돌연 반일 마이크를 든 것은 별개의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13년 전 민정수석이던 자신이 포기했던, 법무장관으로의 길로 조 전 수석을 보내려고 작정한 분위기다. 인사청문회 관문을 앞둔 조 전 수석이 야당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것도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마저 “이 폭주를 막을 길이 없어 한탄스럽다”며 ‘어법조’(어차피 법무부 장관은 조국)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장관으로 지명하는 가장 큰 명분은 검찰개혁 완성일 터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패스트트랙 충돌을 거쳐 이미 법제화 단계로 넘어간 상태다. 조 전 수석 자신도 “이제 정말 국회의 시간”이라고 했다. 숱하게 정치권을 자극해 온 그의 법무부행은 오히려 야당의 반발을 불러 개혁법안 통과를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조국 카드’를 고수한다면, 그것은 검찰 통제에 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법무장관은 검사 인사권을 쥐고 있고, 검찰이 혹여나 정권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때 쓸 수 있는 ‘수사지휘권 발동’이란 무기도 갖고 있다. 조 전 수석이 법무부로 가는 것 자체가 검찰 독립성·중립성 시비를 부르겠지만, 노무현정부 때의 검찰 트라우마가 있는 현 청와대로서는 ‘민주적 통제’라는 목줄을 놓기 두렵고, 이를 수행하기엔 그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조 전 수석이 항일 여론전에 앞장선 것도, 법무부행 채비를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 역시 정치라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돼야 할 듯하다. 의식하든, 못하든 ‘권력본능’에 충실하게 된 것이다. 자신에 대한 도덕성, 정당성 시비에 참을 수 없다는 듯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노라면 ‘정치 관료’를 넘어 직업 정치인의 길로 완전히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조 전 수석이 여전히 자신을 진보 학자나 시민활동가 같은 범주에 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본인 행보와 과거 학자로서의 소신 사이의 괴리는 ‘죽창’과 ‘공화주의적 애국’만큼이나 커 보이는데도 인정하길 거부한다. 일종의 허영심이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는 막스 베버가 ‘정치영역에서의 치명적 죄악’으로 지적한 ‘객관성 결여’와 ‘무책임성’과 연결될 위험이 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판에 “맞으면서 가겠다”지만, 그가 가겠다는 곳은 어디인가. ‘폴리페서’ 논란에 “앙가주망(현실 참여)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항변하기엔 스스로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지호일 온라인뉴스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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