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에 들어갔을 때처럼 주변을 보지 못 한 채 극도로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을 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라고 한다. 상하좌우 주변을 볼 수 없고 오직 빛이 있는 터널의 끝부분만 보이는 것이다. 터널 시야라고도 한다. 시각장애의 일종으로 뇌 병변, 안과 질환, 약물 중독 등과 같이 몸의 문제들에 의해 나타나지만, 심리적인 문제로도 발생한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졌을 때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는 것도 터널 비전 탓이다. 이 현상에 빠지면 주의력과 정보처리 능력이 급속히 나빠져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지난 2일 일본이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에서 뺌으로써 양국 관계가 파탄 났다. 이날 새벽 북한은 다시 동해를 향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이 이날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강행할 것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날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파탄 났다. 중국도 한국에 앙앙불락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에 항의하자 왕이 외교부장은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제기하며 역공했다. 사드 문제는 이른바 ‘3불(不) 약속’으로 마무리됐다는 것은 오직 한국 생각이었던 셈이다.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도 적반하장 행태를 보였다.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하고, 더 나아가 한국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착각으로 드러났다. 사면초가다.

한국이 이렇게 고립에 빠진 것은 정부의 ‘북한 몰입’ 외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2016년 말 미국과 북한이 ‘강 대 강’으로 치달아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한반도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정부의 업적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북한 비핵화 의지를 오판하고 남북 관계 진전이 가져올 장밋빛 환상에 빠졌다. ‘아니다’는 신호가 잇따르는데도 더욱 북한에 집착했다. 북한에 몰입하면서 주변국의 불만과 동요, 한·미동맹-한·미·일 협력체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터널 비전에 빠졌다.

정신분석가인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는 터널 비전을 카메라의 ‘멀리 찍기’와 ‘가까이 찍기’ 기능을 남용하는 것에 비유했다. 멀리만 찍으면 얼굴 표정이 자세히 안 나오고, 가까이만 찍으면 팔다리가 잘려 나와 사진을 망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는 데도 터널 비전에 빠지지 않고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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