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좋은 이웃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임진왜란이나 식민지배는 말할 것도 없고, IMF 사태 와중에 자금을 회수해 위기를 악화시키고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하기도 했다. 최근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가 간 분업의 세계 경제질서를 뿌리째 흔들고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경제전쟁이다. 우리가 입을 타격은 IMF 위기보다 훨씬 광범위할 것이다. 대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손상되고 많은 중소기업이 생존 위기에 빠질 것이다. 재원을 창출하는 기업이 위축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와 고용 등도 연쇄적으로 위기에 빠질 것이다.

물론 정부가 경제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대법원 판결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고, 올해 초 일본 측에서 징조가 보였음에도 최근에야 협의를 시도하다 거절당한 정부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벌어졌으면 정부를 중심으로 일치 단결해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현 사태는 임진왜란과 유사한 면이 많다. 당시에도 침략 징조가 많았음에도 정치권이 당쟁에 빠져 대비하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징비록’을 참고할 만하다.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류성룡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쓴 책인데, 전쟁을 이기려면 최소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첫째, 임기응변적 즉흥 대응만 남발하지 말고 전체 전쟁의 구도에 초점을 맞춘 큰 전략이 필요하다. 개별 전투가 아니라 전체 전쟁을 이기려면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데 현 정부에는 비분강개해서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투사들은 많은데 냉철한 전략가는 부족하다. ‘삼국지’에서 조조에 쫓기던 유비가 관우, 장비 등 휘하 맹장들을 자랑하자 수경은 그들은 필부의 용맹만 있고 전체 전쟁을 이길 전략은 없으므로 큰 그림을 그릴 전략가가 필요하다며 제갈량과 방통을 추천한다. 임진왜란 때는 류성룡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일단 선조를 피신시켜 정부 붕괴를 막고, 명나라의 개입을 유도하며, 이순신이 보급로를 차단하고, 육지에서 모든 병력이 합세해 침략군을 몰아낸다는 명확한 전략이 있었다. 지금 우리의 경제전쟁 전략은 무엇인가?

둘째, 이기는 전략에는 우리와 상대의 장단점에 대한 치밀한 분석, 즉 지피지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1차 수출 제한에 포함시킨 세 항목을 보면 얼마나 우리 경제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했는지 알 수 있다. 지피지기의 화신이 바로 이순신이다. 그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식으로 비장한 각오만으로 싸운 것은 절대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는 아예 하지도 않았으며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100% 이길 수 있는 철저한 사전 분석과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1년 전 전라좌수사가 된 이순신은 임박한 침략을 예측하고 미리 일본 배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 명량대첩 등에서 활용했다. 또 일본 병기를 철저히 분석해 병기 개발에 활용했는데 현충사에 보관된 칼은 조선도검이 아니라 당시 최고 품질이던 일본도를 개량한 것이다. 지금도 우리보다 훨씬 큰 일본을 맞아 싸울 때 일본의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셋째,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량을 총동원해 드림팀으로 대응해야 한다. 경제전쟁에서 지면 모든 고통은 국민들이 짊어져야 하는데도 이 와중에 친일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쉽게도 현 정부의 경제와 외교라인은 역량면에서 약체로 평가된다. 이번 사태에 조기 대응을 못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기는데 도움만 된다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삼고초려해서 모셔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의심 많은 선조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던 이순신에게 중책을 맡기도록 설득했던 류성룡의 리더십은 놀랍다. 유사한 예가 IMF 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는 상대 진영 인사였던 이헌재와 5공 출신의 김중권까지 영입해 IMF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리더들이 류성룡과 김대중의 위기대응 리더십을 배워야 할 때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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