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가장 경계한 것은 홧김에 싸우는 일
고수는 전략으로 하수는 감정으로 싸운다
국민 피해 최소화와 속전속결 두 원칙을 지키며 대응하고
과거보다 미래 선택한 DJ의 결단에서 지혜 얻어야


악화일로인 한·일 관계는 몇 가지 핵심적 질문을 불러낸다. 패권경쟁의 구도로 급변하는 네오 내셔널리즘 시대에 한국의 중장기적 국가 전략은 무엇인가? 그 속에서 한·일 관계를 어떻게 배치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작금의 한·일 갈등은 어떤 방법으로 풀어야 현명한가?

첫째 문제에 대해 한·미동맹과 해양세력 연대를 우선으로 하면서 모든 나라와 평화 선린과 경제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답에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일부 주사파 말고는 없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글로벌 자유질서가 위협받는 시점에서 강대국 내셔널리즘에 대응할 복합 외교 전략은 더욱 강조돼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대전략의 트랙을 이탈하는 것이다. 일본이 정경분리 원칙을 깨고 개방적 자유질서를 위배하는 행위를 한다면 이를 교정해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지, 일본과 치킨게임을 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구한말이 아니라 21세기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존과 번영, 이익을 위한 배타적 존재다. 국가들의 관계는 생존 번영 이익을 위한 전략과 전략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장이다. 그래서 전략 없이 국제 관계에 임하는 것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일 많이 읽히는 손자병법은 이렇게 가르친다. 꼭 해야 하는 싸움은 신중히 하고(愼戰·신전), 필요 없는 싸움은 하지 않고(非戰·비전), 실익이 없는 싸움은 거부하고(不戰·부전), 사소한 싸움은 방지하고(止戰·지전), 싸울 때는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운다(先勝·선승). 손자는 분노와 홧김에 싸우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고수는 전략으로 하수는 감정으로 싸운다. 고수는 주도권을 잡고 싸우고, 하수는 끌려 다니며 싸운다. 고수는 변화무쌍한 허허실실 전법으로 움직이는 반면 하수는 딱 예상하는 대로 움직인다.

손자의 기준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일본과 제대로 싸우고 있는가? 필요 없는 싸움 실익이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홧김에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급소를 찌를 전술은 있는가? 이런 질문에 ‘참 걱정 된다’고 말하면 친일파일까? 일본이 정경분리 원칙을 깨고 외교문제를 경제문제로 역공한 것은 계산된 기습이다. 그들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고 벌이는 싸움이다. 국가 간 신뢰의 문제를 명분으로 아시아의 강국 위상도 보여주고, 과거 전자 반도체 등에서 한국에 추월됐던 쓰라린 경험을 곱씹으며 한국의 첨단산업도 견제하고, 한·일 갈등을 활용해 개헌을 밀고 가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라 한국을 가장 당황하게 만들 조치가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계산해 정규전이 아니라 유격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상대가 수를 쓸 빌미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손 놓고 있다가 막상 사안이 터지자 ‘분기탱천’해서 이 수 저 수 동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상대는 스트레이트를 정확히 찌르고 있는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다 그 주먹에 자신이 맞을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는 그런 자충수의 하나다. 문제 해결에 도움은 안 되고, 상대가 쳐놓은 그물에 자칫 걸려들 수 있다.

손자는 ‘전쟁에서 상책은 지략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며, 차선은 외교로 이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무력으로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고, 최하의 방법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성전이 최하책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기기도 힘들고 아군의 희생을 너무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공성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자병법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상대에게도 피해를 덜 주면서 이기는 것을 최선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백전백승이 좋은 것이 아니고, 선혈이 낭자한 싸움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전략과 이익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접근한다면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해 이 갈등을 풀어야 한다. 첫째는 국민피해 최소화 원칙이고, 둘째는 속전속결 원칙이다. ‘사케 논란’에 대해 여권이 ‘그럼 일식당은 다 문 닫으라는 얘기냐?’로 반박할 때 답은 이미 들어 있다. 수출 규제든 불매운동이든 결국은 양국이 모두 피를 흘리는 싸움이다. 상호의존적인 가치 사슬의 경제에서 일본이 정말 수출 규제를 수출 금지로 이용한다면 그것 역시 일본의 자살골이다. 그렇다고 ‘이에는 이’ 대응과 반일감정 확산으로 정말 일본이 레드라인을 넘게 하는 것 역시 하책이다. 그래서 속전속결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의 도움을 얻어 ‘우선 멈춤(standstill)’을 도모하고, 다른 한편 문제의 뿌리인 징용문제에 대해 현실적 대안을 가지고 협상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물은 더 많아지고 감정을 자극할수록 비용은 커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지도자의 결단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선택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낸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그 후예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한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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