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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Here and Now’를 되뇌는 이유


과거, 미래 아닌 현재가 축복… 예수 “내일 일 걱정말라” 강조
건강염려증, 불안증에 특효약… 아픈 후배에게 격려 됐으면


10년 가까이 된 얘기다. 무단히 두통이 생겨 도무지 낫질 않았다. 스트레스 아니면 잦은 음주 때문이겠지 생각하면서도 점점 불안해졌다. 쓸데없는 상상까지 하다 보니 ‘뇌손상 가능성’이란 자가 진단이 내려졌다. 결국 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아 생애 처음 MRI(자기공명영상) 촬영까지 했으나 결과는 정상이었다. 두통은 씻은 듯이 나았고, 아내는 건강염려증이라 판정했다.

수년 뒤, 장시간 겨울바람을 쐬었더니 어지럼증을 동반한 두통 증상이 나타났다. 며칠 지나도 호전되질 않았다. 아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안심시켰지만 나는 기어코 ‘초기 뇌졸중 가능성’이라 자가 진단했다. 서둘러 응급실을 찾아 MRI를 촬영한 결과 정상으로 판명됐고, 어지럼증은 이내 사라졌다. 그날 저녁 직장 회식자리에서 이 얘길 했더니 친한 후배가 “선배는 한마디로 불안증이에요, 내가 좋은 치료법 하나 가르쳐 드릴게”라며 ‘Here and Now’를 명심하라고 했다. 닥쳐올 미래 걱정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란 뜻이겠다.

후배 조언이 곧바로 머리에 꽂힌 건 우연이 아니었다. 불심이 충만한 누님은 당시 시골 어머니 댁 안방에 이렇게 써 붙여놓았었다. ‘과거를 원망하지 말라,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오늘은 불교방송 ○○번 시청’. 사연 많고 고단했던 인생길에 앞날 걱정까지 하시는 어머니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없다고 손뼉을 쳤건만 나에게도 좋은 말이란 걸 후배가 말해주기 전엔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이런 종류의 얘길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정한 우리집 가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일맥상통하는 말일 텐데….

아무튼 그날 귀갓길에 ‘Here and Now’를 카톡 상태메시지로 등재한 뒤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 나에겐 귀중한 생명의 문구란 생각이 들어 그것과 관련된 사연이나 의미를 가끔 되새겨보곤 한다. 그 덕분인지 이후 건강염려증, 불안증 따위는 일단 내게서 멀어진 듯하다.

사실 ‘Here and Now’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강조돼 왔다. 톨스토이는 단편 ‘세 가지 질문’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기억하시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현재라는 사실 말이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하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오.”

예일대 교수를 지낸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저서 ‘Here and Now’에서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염려를 떨쳐버려야 현재를 잘 살 수 있다”며 “지금을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며 지금은 바로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설파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의 저자 스펜서 존슨은 “하늘이 주신 선물은 흘러간 과거도 불확실한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과 말은 모르긴 해도 성경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고 가르쳤다. 저명 기독 저술가 CS 루이스가 이 구절을 적확하게 해설하는 듯하다. 그는 악마의 유혹을 유형별로 묘사한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원수(예수를 지칭)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 쓰길 바라지만 우리(악마)의 임무는 그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송가(頌歌)’에서 언급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도 같은 의미일 게다. ‘죽은 시인의 사회’란 제목의 영화와 책에 소개되며 식상할 정도로 유명해진 이 말은 내일에 큰 기대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는 뜻이다. 교회법 권위자 한동일 교수는 저서 ‘라틴어 수업’에서 카르페 디엠을 이렇게 해석했다. “오늘 이 시간 세속적이고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의미한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다.” 영국 록밴드 퀸이 부른 ‘Now I am here’와 오아시스가 노래한 ‘Be here now’에도 이런 뜻이 녹아 있다고 봐야겠다.

건강염려증, 불안증의 경위와 극복 과정을 지인들에게 얘기하다 보면 이런 종류의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안증이 심해져 병원에서 진단받게 되는 질병에는 공황장애, 공포증, 광장공포증, 특정공포증, 외상후스트레스, 사회불안장애, 분리불안장애 등이 있다. 여기에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질병 수준은 아닐지라도 단순 불안이나 스트레스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받는 걸 애써 숨기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증상이 심할 경우 약물요법이 불가피하겠지만 당장 오늘 하루 마음 편하게 보내려는 자세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심리상담사의 역할이 커지는 이유일 게다.

‘Here and Now’를 조언해준 후배가 요즘 많이 아프다. 신앙이 돈독한 덕에 그나마 잘 버티고 있어 다행이다. 직장 후배들이 매일 아침 보내주는 중보 기도문이 투병에 큰 힘이 되겠지만 앞으로가 불안하지 않을 리 없다. 오늘은 내가 그에게 조언을 해야겠다. 온갖 두려움 떨쳐버리고 ‘Here and Now’를 실천하자꾸나. 병 고침은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주님께 모든 걸 맡기고.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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