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대열 (4) 반동 출신 극복하려 5년을 매일 4시간 이상 안자

동기생 절반이 로열 패밀리 출신, 이들과 경쟁하려니 눈 앞이 캄캄… 졸업반 돼서는 상위권까지 올라

1989년 7월 1일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 모습. 당시 남한 측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가한 임수경의 방북이 논란이 돼 유 목사 독일 유학이 무산됐다. 게티이미지

내가 간 평양의 국제관계대학은 당시 북한 내 최고 인기 대학이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공사가 나의 대학 동문이다. 그 학교는 들어가기도 어렵고 졸업하기도 어려운 대학이었다. 입학하고 보니 동기생들의 절반이 이른바 로열 패밀리 출신들로서 유학 경력도 갖고 있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들과 경쟁을 한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이겨내야 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5년을 매일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5학년 졸업반이 돼서야 상위권까지 오를 수 있었다.

졸업시험을 마친 2월 말, 나는 노동당 중앙위 대외정보조사부 공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것은 졸업생 중에 최고로 뽑혔다는 얘기다. 졸업 발령을 받고 대학 교정을 나오며 푸르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하늘이 또 열리는 것 같았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작은 할아버지를 둔 반동 출신인데 어떻게 최고의 성분만 갈 수 있는 곳으로 배치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다.

노동당 중앙위 대외정보조사부 공작원이 된 난, 평양 룡성구역과 평남 평성 사이에 위치한 조사부 초대소(안가)로 배치 받았다. 본격적인 공작원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우리 팀은 7명으로 구성됐다. 모두 김일성대 김책공대 평양의대 등에서 뽑혀온 최우수생들이었다.

먼저 우리는 6개월 내에 독일어 기초를 떼는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치는 대로 독일의 각 대학에 입학해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군복무와 대학을 마친 최우수 학생들을 선발해 이렇게 외국대학에 보내 공부시킨다. 이후 세부화 된 교육과 훈련을 거처 외국인 신분으로 위장시킨 후 해외로 침투시킨다. 조사부는 그렇게 공작원들을 양성한다.

6개월 훈련을 마친 우리 일곱 명은 독일의 각 대학으로 가게 됐고 전공도 정해졌다. 며칠 안에 출발할 것이란 명령도 내려졌다. 그런데 갑자기 명령은 취소됐으며 독일 행도 금지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88년 당시 평양에서는 남한의 88서울올림픽에 준하는 국제 행사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열었다. 거기에 남한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임수경이 참가했다.

그녀는 출국 당시 행선지를 일본으로 하고, 출국 목적을 관광으로 밝힌 뒤 비밀리에 평양에 들어왔다. 서부 독일에 있던 북한 공작 기관이 그녀의 북한 입국을 도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게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우리들의 유학을 후원했던 북한 공작 기관이 안전상 서독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독행이 취소된 우리에게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 입학하라는 명령이 다시 내려왔다. 그곳에서 난 또다시 공작원 교육을 받아야 했고, 동시에 해군특수부대에서 받았던 것과 비슷한 강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다. 1년간 그곳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졌다. 이듬해 8월 나는 평양 시내의 평범한 아파트 초대소로 다시 발령 받았다. 그렇게 2개월 동안 중국어 기초 공부를 한 뒤 북경외국어대학으로 가게 됐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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