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첨단의 건축이나 도시공간을 보러가는 일본, 특히 도쿄는 갈 때마다 묘하게 익숙하다. 낯설지 않다. 우선 지나는 사람들의 생김새며 옷차림까지 크게 다르지 않고 어릴 적 살던 동네 골목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이면도로나 도심을 내달리는 고가도로, 전신주에 엉켜있는 복잡한 전선까지 익숙하다. 길 하나를 건너기 위해 만든 지하보도, 지하철의 푹신한 의자처럼 우리에게서 사라진 도시 풍경은 외국이라기보다는 예전의 서울로 시간여행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서울의 기본적인 도시구조가 일제강점기에 완성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지금까지도 일본 도시, 건축의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되짚어볼 만하다. 첫째는 법규와 제도, 용어 등의 근본적인 층위에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내면화되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조항과 일본의 사회적, 지리적 여건이 만들어낸 특수한 조항이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둘째는 이후로 지속된 학문적 종속도 마찬가지로 비판받아야 한다. 언어나 문화의 유사성이 크지만 서구 학문의 조류가 일본을 통해 수입되는 과정에서 생긴 왜곡은 대표적인 종속의 폐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분별한 모방이다. 경제성장의 방향이나 사회구조의 유사성 때문에 일본의 건축이나 도시계획은 빠지지 않고 참조의 대상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일본 베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기 신도시를 급하게 계획하면서 전문가들이 일본의 다마 신도시로 달려갔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다마 신도시는 텅 빈 유령도시가 되어 실패사례로 등장할 뿐이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국중호 교수의 저서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은 두 나라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리, 인종적으로 가깝고 한국이 일본의 사회현상을 후행한다는 현상적 징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속성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국 교수에 따르면 반도에 위치하여 문화의 유통경로이며 변화무쌍한 사회변동을 거친 우리 민족은 민첩하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이고 강한 권위에 종속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본은 문화의 말단에서 모든 것을 차근차근 받아들이는 입장이어서 기존의 전통과 권위 그리고 전체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섬나라에서는 오래 소속되어 주어진 환경을 묵묵히 감내하며 유대와 결속이 중요시되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것을 빠르게 수용하는 한국인은 많은 차이를 만들어냈다. 서울의 고가도로는 대부분 헐리는 추세이고 가정용 전압도 효율적인 220V로 바꾸어냈다. 지하철 좌석은 불연재로 모두 교체하였고 일본식 번지 대신 도로명 주소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반면에 불합리하더라도 집단 권위에 복종하는 일본인들의 순종적인 태도는 역설적으로 도시공간의 왜곡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공무원들이 열을 올리는 일본의 도시재생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있는 ‘일본적’인 것들이 많다. 최근 개발을 마친 도쿄역 앞의 광장은 민간에게 대폭 권한을 주거나 용적률 이전 등 새로운 기법으로 우리 공무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지만 공간적 결과는 시대착오적으로 자동차 중심이다. 택시 승강장을 위해 광장의 형태를 흐트러뜨리고 상가가 가로막아 보행자는 뒷전이다. 그래도 묵묵히 걷는 일본인들에게는 적합할지 모르나 보편적 현대도시의 방향과는 궤를 달리하며, 특히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것도 많다.

칸트는 공간을 외부 대상에 대한 인식의 조건으로 보았고,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건축이 우리의 행동양식을 빚어낸다고 말했다. 공간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이 일상에 항상적으로 개입하는 일종의 사회적 통제로 파악했다. 더구나 도시공간은 사용자에게 명령하고 통제하며 의식의 층위까지 개입하는 중요한 물리적 장치이기에 일본식 공간을 주입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물론 일본의 도시공간이 저급하거나 열등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의 기질과 풍토 지리적 여건에 맞게 발전되어온 것인데 전혀 다른 성향의 서울시민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베끼는 일은 마치 220V의 가전제품을 110V의 전원에 연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쿄는 서울의 미래가 아니다. 일본 건축, 도시를 무분별하게 모방하여 우리 생활공간을 불합리하게 만드는 사례 목록이라도 만들어 보아야겠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