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가 명동 등 관광객 밀집지역에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상징인 ‘노 재팬’ 깃발 1100개를 설치하다 몇 시간 만에 철회했다.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시민의 질타가 깃발을 끌어내렸다. 목소리를 높인 건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불매는 시민이 할 테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외교를 하라”고 했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지방정부의 어설픈 감정 대응을 막아냈다.

이 깃발을 저지해야 할 이유는 넘칠 만큼 많았다. 첫째, 서양호 중구청장은 “우리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설치를 강행했는데, 이렇게 반감을 드러내고 전시하면 일본을 이길 수 있는가. 경제전쟁에 필요한 무기는 실력이지 감정이 아니다. 둘째, 지금 불매운동이 힘과 의미를 갖는 것은 시민의 자발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관(官)이 끼어들면 이를 관제 캠페인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꼴이 된다. 셋째, 일본 정부가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했기에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명분상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주도해 일본인 관광객에게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일은 국가 간 자유로운 인적교류를 저해하는 행태여서 국제사회의 지탄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월한 명분을 왜 스스로 내던지는가. 넷째, 이 와중에 서울을 찾는 일본인은 반한감정이 크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반갑게 환영해야 할 이들에게 굳이 반감을 심어줄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반한 여론을 부채질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하다. 다섯째, 불매운동의 셈법은 일본 정부가 행동을 바꾸도록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자는 것인데, 중구의 조치는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을 끊어 거꾸로 우리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행동이었다.

서 구청장이 8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가보기를 권한다. 127편 상영작 중 일본영화 7편이 포함돼 있다. 제천시의회가 일본영화 상영 취소를 주장했지만 제천시와 영화제 사무국은 민간 교류, 문화 교류에 정치적 개입은 안 된다는 취지에서 전부 상영키로 했다. 일본이 아이치 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가로막은 것과 대비되는 조치였다. 정치와 문화를 구분하고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구분하는 성숙한 대응이 극일을 외치는 감정적 대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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