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순종하고 이웃 사랑하는 신앙인 세워 ‘선한 영향력’ 확산

건강한 훈련 프로그램 -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모세오경 아카데미’ ⑮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청년들이 지난달 14일 미얀마 고아원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율동을 하고 있다. 순복음삼마교회 제공

세상 끊기-예배의 회복

순복음삼마교회는 모세오경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출애굽기에서 ‘세상 끊기’ 훈련을 한다. 70명으로 애굽에 왔던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민족으로 부흥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는 250만~300만명으로 추정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을 떠나 홍해를 탈출하는 대집단 이동을 했다. 이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광야였다. 그들이 전토를 버리고 광야로 갔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었다.

당시 애굽의 황제였던 바로는 모세에게 묻는다. “너희는 왜 광야로 가려고 하느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섬기려면 이곳에서도 섬길 수 있는데 왜 굳이 광야로 가려고 하느냐.” “분리된 삶을 살기 위해 가야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배다. 그래서 출애굽기 마지막 장인 40장을 보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막을 만들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면서 마친다.

출애굽기에서 예배를 강조한 것은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예배하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에 대해 소홀히 여기다가 예배조차 무너졌다. 예배가 완전히 무너지자 그때부터 사단이 판치기 시작한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위임받아 세상을 관리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입에서 찬양이 떠나고 예배가 무너지자 세상은 그들을 우습게 생각했고 나중에는 노예로 취급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출애굽기와 열왕기서가 말하고 있다. 바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들을 심한 노역으로 예배를 대체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는 입에 찬양이 있었고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했지만 노역하면서 그들의 입에는 한숨과 고통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죽은 것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하찮게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의 노예가 되어 일평생 일하다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 결말이다. 그들은 주일도 일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갔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오는 것은 정한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혼란한 세상에도 언제나 ‘남은 자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타락하여 예배가 무너졌지만, 그곳에도 남은 자는 있었다. 그 사람이 산파였던 십부라와 부아였다. 순복음삼마교회는 십부라와 부아를 출애굽의 중심 인물로 가르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해방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순복음삼마교회는 세상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도록 권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건강하고 거룩한 지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 전 성도가 기도하고 전략을 짜고 함께 헌신한다. 선거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해서 대처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십브라와 부아와 같은 믿음 좋은 신앙인을 세우는 것이다. 십부라와 부아의 직업은 미천한 산파였다. 하지만 낮은 계급의 직업을 갖고도 큰일을 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성경은 그들의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 1:15~17)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무너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10가지 재앙을 보여주었고 바로가 꼼짝 못 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봤다. 그제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바로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홍해 앞에서 문제가 생기자 두려움에 떨며 바로의 포로로 살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의 민낯이었다.

그런데 십브라와 부아는 달랐다. 바로가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두려워 바로의 명령을 거부했다. 만약 십브라와 부아가 바로의 명령이 무서워 아이들을 죽였더라면 모세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국가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산파들이 모세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나올 줄 미리 알고 이러한 일을 행한 것은 아니었다. 산파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실천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산파의 신앙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고 300만명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실천했던 산파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강하게 만드셨다. 산파의 가정엔 축복이 내렸다.

오늘날 대한민국 기독교인이 1000만이라고 한다. 수많은 영적 거장이 있고 지도자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두려워하는 산파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다. 생명을 가진 자만이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일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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