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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정진영] 여름 휴가 단상

한국 교회에 대한 과도한 공격 분명 있지만, 일부 목사의 수준 이하 발언은 빌미를 주고 있다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상큼했다. 바다 위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지난 주말 남쪽 끝 섬 진도와의 대면으로 ‘7말8초’의 가족 여름휴가는 절정을 맞았다. 서울 집에서 진도의 목적지까지는 418㎞, 서울~부산과 거의 맞먹는 먼 길이었으나 마음은 가벼웠다. 신축된 지 보름 정도밖에 안 된 숙소는 수백 개의 객실 모두 바다 풍광을 안고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베란다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장년인 내게 휴가는 ‘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재충전과 힐링을 생각하지 않는다. 먹고 자고 뒹굴다 어슬렁거리면 그만이다. 오후 늦게 입실해 첫날을 어영부영 보내고 이튿날 늦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왔다. 인터넷으로 찾은 맛집에 가기 위해 차를 몰고 진도읍으로 향하다 도로표지판의 팽목항을 봤다. 20여㎞ 거리다. 서울서 내려올 때는 진도에 팽목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참사가 발생한 지 5년4개월 동안 그만큼 둔감하고 무심했던 것이다.

차를 돌려 그곳에 갔다. 근처 작은 섬을 오가는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항구는 붐볐다. 그러나 수천 개의 노란 리본과 추모 벤치, 기억의 벽, 하늘나라 우체통, 못 찾은 시신을 밝히는 듯한 모형 등대 등 세월호의 흔적이 가득한 추모 제방을 찾는 발길은 적었다. 그곳은 그저 팽목항 한쪽의 공간일 뿐이었다. 누군가 걸어놓은 풍경의 땡그랑거리는 소리는 맑았다. ‘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소서’라는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아픔에 절실하게 동참하지 못한 어른인 나는 미안했다.

휴가 시작인 지난 주초 국립영천호국원에 모셔진 부모님을 뵈러 갔다. 아버지는 작년 6월, 어머니는 같은 해 11월에 돌아가셨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 옆에 어머니가 함께 계신다. 따가운 볕이 내리쬐는 호국원에는 예상보다 추모객이 많았다. 마침 유가족이 남긴 추모엽서 중 내용이 절절한 것들을 모아 전시 중이었다. 한 단체가 엽서의 글을 골라 패널에 캘리그라피로 옮겨 적어놓았다. 안타까움, 그리움, 추억, 사랑, 다짐을 담은 한 글자 한 글자는 가슴을 후벼팠다. ‘얼마 전에 큰누나, 막내누나, 형이 모여 엄마 보고 싶어 울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꿈에 한 번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요’ ‘엄마 아버지 사진 말고 손을 만져보고 싶네요’ ‘여보 당신 없이 혼자 맞는 가을이 더욱 시려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회한이 몰려왔다.

평소와 달리 이번 피서의 처음과 끝에는 죽음이 있었다. 경북 영천의 호국원에서 시작된 일정은 팽목에서 마무리됐다. 따지고 보면 영 무관한 것은 아니다. 휴가의 원천이 쉼이라면 죽음은 영원한 쉼이다. 이틀 밤을 자고 아침 일찍 진도를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뻥 뚫렸다. 덕분에 집에 도착해 오후를 온전히 가질 수 있었다. 빨래와 청소를 돕고 막바지 휴가를 느긋하게 보냈다. 산책을 마치고 강아지를 씻긴 후 들른 집 근처 카레 전문집에서의 저녁도 괜찮았다. 자기 전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 깜짝 놀랐다. 지상파 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몇몇 목사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 정확한 멘트를 확인하기 위해 프로그램 홈페이지 스크립트를 찾았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의 전범이다’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일본에 대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한민국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처리하실 것 같냐’ ‘일본이 멸망시키지 않았어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던 나라가 조선이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근래 일부 언론은 한국교회를 향해 과도한 비판을 쏟아놓는 경향이 있다. 절대다수의 교회는 공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극히 적은 부정적 양상을 과도하게 조명하는 흐름이 있는 듯하다. 그런 움직임은 TV가 더 유난스럽다. 뉴스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주요 기사로 다루거나 물량 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발언 목사 보도에서 보듯 교회가 자초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불교나 가톨릭과 달리 많은 교단으로 나뉜 개신교는 일사불란한 대언론 대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회나 목회자의 사소한 오류가 언론에는 좋은 기삿감이라는 점을 유념해야겠다. 온전한 쉼을 누렸던 여름휴가 끝 무렵, 괜한 씁쓸함을 맛봤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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