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기도, 고난 있을 때 하는 것?… NO, 교인의 특권이자 의무!

박호종 목사의 ‘다음세대와 기도의 집을 세우라’ <6>

지난달 서울 서초동 더크로스처치에서 열린 ‘라스트 러너’ 예배에서 청년들이 손을 들고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더크로스처치 제공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한국교회가 다음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세 가지 유업이 있다. 이 나라의 민족이 여기까지 승리하게 한 중요한 유업! 첫째는 ‘드림’의 유업이다. 전 세계 교회 어디에도 없는 헌신과 물질의 드림이 한국 교회사에 있다. 이 나라의 경제 기적을 일컬어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 한국만이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된 전쟁을 겪었음에도, 이전과 같은 수준의 회복을 넘어 성장을 거듭했다. 우연일까? 아니다. 목숨같이 아껴왔던 금과 은, 패물들이 전쟁 후 불타버린 예배당의 건축을 위해 아낌없이 드려졌다. 내 집보다 먼저 주님의 집을 세운 믿음과 헌신이 있었다.

두 번째 유업은 ‘종말 신앙’의 계승이다.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의 삶! 본질을 추구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중심엔 부활과 재림의 신앙이 있다. 이 민족에는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고 사랑하는 ‘신부의 영성’이 있었다. 이 믿음은 기도의 집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며 모진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항일 정신은 교회의 건강한 종말적 믿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세 번째, ‘기도’의 유업이다. 앞서 말한 드림의 헌신과 재림의 신앙을 생명력 있게 한 힘에는 기도운동이 있다. 기도는 다음세대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업이며 이 나라 교회의 첫사랑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의 유업을 물려줄 것인가.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왜 기도의 불을 잃어가고 있는가. 교회의 기도가 왜 약해지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다음세대들에게 기도를 무엇이라 가르쳐주어야 할까.

‘기도의 신학’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기도를 잘못 배웠다. 또 다분히 치우치고 지엽적인 내용으로만 알고 있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잘 사는 것,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도의 주된 내용이었고 간증이었다. 그러나 기도의 집에서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는다.

기도의 집에서는 무엇을 기도하는가.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기도의 집에서는 다음세대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가. 우리는 24시간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의 집에서 다음세대들이 밤새도록 기도하고 금식하며 삶의 전부, 혹은 일부를 헌신하게 하는 원동력은 기도를 배우는 데 있다. 그들에게 기도의 목적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굶주림의 해결을 기도의 이유라 한다면, 많은 이들이 기도의 필요를 간과할 것이다. 부모세대가 일군 부유한 환경 속에서 왜 기도에 헌신해야 하는지, 기도의 이유와 열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도를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나의 상황과 처지에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그 기도를 우리도 해야 한다.

기도의 집에서는 하나님 나라 차원의 기도가 드려진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기를 구하며 선포하는 기도이다. 이는 곧 이 땅에서 이뤄져야 할 정의와 공의의 문제, 도시의 부흥과 변화, 다음세대의 축복을 위한 기도이다. 한마디로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신학이 곧 기도의 이유이자 목적, 내용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8~9)

교회가 본질적 기도를 잃으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늘을 바라보며 전진하던 기도의 열정이 땅의 것들에 매이는 순간, 기도는 이방인들의 종교 행위와 다를 바 없게 된다. 한국교회의 기도 불씨가 한순간에 꺼져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교회는 내림세를 맞이한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도 같은 결과를 맞았다. 기도의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암묵적으로 기도는 가난하고 고난이 있을 때 하는 것으로 가르쳐졌다. 절대 아니다. 기도는 하늘에 속한 시민으로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다음세대 특히 청년 대학생들은 정의와 공의의 문제에 열정이 있다. 기도와 예배로 사회에 참여하고, 진리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열정을 발휘한다. 우리는 본질적 기도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도 이 땅에 임함을 믿는다. 기도의 신학을 바꾸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다음세대의 음악과 미디어, 예배로 기도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교회사 속 부흥을 유심히 보라. 기도를 통하지 않고 일어난 부흥은 없다. 특히 십대들이 기도할 때, 위대한 부흥이 시작됐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이 움직인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하늘의 정부는 이미 오래전에 뜻을 굳혔다. 이제 땅의 의회인 교회가 합심해 묶고 푸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교회의 권세이고, 마태복음 18장에 언급된 하늘 문을 여닫는 위대한 비밀이다. 기도의 집은 그래서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가 곧 기도의 집이다. 기도의 집에서 다음세대가 본질적인 기도를 전수하며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

박호종 목사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