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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유대열 (6) 일본에는 무조건 이겨야… 또 하나의 코리아팀 결성

경기 당일 남북한 함께 응원하며 함성… 단일팀 사기 하늘을 찌르며 일본 대파

일본 지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한 탁구팀의 현정화(오른쪽), 리분희조가 경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한 학생들과 마주친 지 1년이 돼가던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때 남북한이 처음으로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했다. 이제 국가가 정식으로 단일팀도 만들었으니, 혹시 통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부는 둘째가 됐다. 학교 수업도 빠진 채 기숙사 내 공용 TV 실에서 함께 경기를 봤다. 남북이 힘을 합쳤는데도 중국에 계속 지니 너무 화가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이변이 일어났다. 남북 여자단일팀이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과 맞붙어 우승한 것이다. 최종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옆 친구들을 부둥켜안고 얼씨구나 춤을 췄다. 그렇게 한참이나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다 주변을 둘러봤는데, 눈앞이 아찔해졌다.

북한 법으로는 만나기만 해도 감옥에 가는 남한 학생들을 우리가 부둥켜안고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른 것이다. 이건 즉각 총살형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정말 당황스럽고 눈앞이 새까매졌다. 어쩔 줄 몰라 있는데 남한 학생회장이 “우리가 힘을 합해 강대국을 꺾은 날입니다. 우리 다 같이 나갑시다”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우린 근처에 있는 한 중국식당으로 갔다. 이날 난생처음으로 남한 사람들과 한잔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도 남북 축구 단일팀을 만들어보기로 결의했다.

얼마 전 북한 유학생 팀과 일본 유학생 팀끼리 축구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실망스러운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일본에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는 그렇다. 경기를 주선한 칭화대 친구들은 일본 학생들 실력이 별로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 질 수 없기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갔다. 베이징에 있는 북한 유학생 150여명이 응원을 나왔다. 일본도 일본대로 지지 않겠다고 모두 응원을 나왔는데 1만명은 돼 보였다. 응원 함성의 열세 속에 결국 2대2로 비겼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일본에 비길 수 있냐. 겉으로는 일반 학생 같지만 사실 우리 중에 절반이 군 복무를 한 사람들이고 또 몇몇은 ‘특수공작원’ 아닌가. 우린 좌절했다.

그 좌절감은 우릴 남북 단일팀 결성으로 이끌었다. 우린 남한 학생들에게 변명 삼아 우리가 실력은 있지만, 응원에서 밀렸다고 했다. 경기 당일 함께 남북한 모두 함께 응원단을 꾸리기로 약속했다. 시합 날이 왔다. 경기장으로 갔더니 이게 웬일인가. 남한 학생들이 운동장을 이미 다 점령한 것이다. 한국인 판이 돼버렸다. 일본 학생들은 ‘시간을 잘 지켜’ 왔는데, 그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됐다. 경기가 시작되고 일본말은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 단일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전혀 지치질 않았다. 시합 결과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4대 0으로 일본 유학생 팀을 짓뭉개버렸다. 모두가 감격했다. 눈물이 났다. 시합이 종료되자 응원하러 왔던 모든 학생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모두가 얼싸안고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날 이후 남북 학생들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사관 번호를 단 차가 우리 기숙사에 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리더니 기숙사로 들어가 친구들을 수갑을 채워 끌어냈다. 남한 학생들을 만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날 우리 중 6명이 북한으로 끌려갔다. 한 달 후 방학을 맞아 북한으로 들어간 나 역시 감옥형을 받았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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