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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교회는 사람의 옳고 그름 따지기보다 상처 감싸주고 허물 덮어줘야

<17> 교회의 존재 목적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가 지난해 4월 교회에서 개최된 행복학교에서 교회의 본질을 강의하고 있다.

‘따라라라라라라라라 따라라 따라라.’ 그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다. 연인을 위해 베토벤이 작곡한 A단조의 서정적인 곡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음악이 골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교회 아이에게 물어봤다. “저 음악 소리가 뭐지?” “청소차 소리요.”

아뿔싸. 그렇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본질을 벗어나면 이런 대접을 받는다. 베토벤이 와서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서글펐을까. 교회도 성도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교회 본질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을 살리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본분을 잃어버리고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병이 들고 만 것이다. 몸에 병이 들면 건장했던 사람도 힘을 잃는다. 교회 안에서 상처를 주고 시험에 든다. 판단하고 비방하고 힘겨루기를 하며 고통을 준다. 사소한 일들로 마음이 상해 괴롭다.

교회는 사람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곳이 아니다. 상한 사람을 싸매주고 허다한 허물을 서로 덮어주는 곳이다. 용납하고 용서하고 감싸주며 사랑으로 살리는 곳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 아프다. 그리고 성도들이 아프다. 아픈 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몸이 마비돼 버린 것이다.

엘리제는 죽었다. 그리고 골목에서 청소차만이 슬픈 그 노래를 울리며 지나간다. 우리의 교회는 지금 어떤가. 교회는 어떻게 병들게 됐나. 전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병이 들게 돼 있다.

목이 마르다. 밤길을 걷다가 골목 가득한 십자가는 참 자랑스러웠었다. 반가운 십자가, 감사한 십자가. 어두운 밤하늘 밑에 지새우고 골목을 비춰주며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십자가는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전도를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오는 길에 십자가를 바라봤다. 갑자기 온몸이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소름이 돋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서러웠고 슬펐다. 한국교회 때문에. “왜 전도하지 않으세요?” “예전에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해도 안 되니까 이젠 그만뒀습니다.” 하기는 해야 할 일인데 안 되니 그만둔 거란다.

전도는 정말 어려운 것일까. 정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일까. 그래서 누가 만들어 낸 말이 있다. 전도는 달란트라고,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그런 표현이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결정하고 그 뒤로 자신을 숨기고 안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열매 없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이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비유다.

전도할 때 열심히 나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전도는 욕심이나 열심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걸 한참 후 깨닫게 하셨다. “하면 된다. 해 보자”하고 두 손을 불끈 쥐고 목청을 높이는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다. 힘써 열을 올려봤자 결과물이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은 같다.

영혼 구원의 무기는 성령이다. 제자들은 기도했고 성령의 강림을 경험했다. 그 힘으로 길거리로 뛰어나가 복음을 전할 때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다. 그리고 말씀을 전할 때 수많은 무리가 회개하며 주께 돌아왔다. 우리가 구할 것은 성령이다. 간절함으로 힘을 다해 임하실 때까지 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도 내쫓으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막 3:27)

말씀은 진리다. 이 말씀은 전도자에게 생명 같은 말씀이다. 하지만 내게는 능력이 없었다. 나 자신 하나도 버텨 낼 힘이 없는 무능한 존재였다. 목회하기 전 경로당에 찾아가 몇 달을 봉사한 적이 있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열심히 섬겨보았는데 한 분도 모셔올 수 없었다. 나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힘이 빠지고 저절로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 교회는 저절로 성도들이 찾아온다던데….’ 한겨울에 벌벌 떨면서 전도지를 몇 주 동안 뿌려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나는 진짜 무능한 사람이었다.

성령이 필요했다. 사도행전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사람을 구원시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목회하기 전부터 오늘까지 변치 않고 있다.

금식과 기도를 일상으로 했다. 체중이 48㎏까지 빠졌다. 금식할수록 영이 더 강해지고 결기가 더해갔다. 마음에 불이 타올랐다. 지금도 어떻게 하든 하루 3시간은 엎드린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나님 앞에 다가서지 않으면 내 영은 죽은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결심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다. 혹여 누가 내게 남길 말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평생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주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보다 더 복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이것이 요셉 다니엘 다윗 바울이 승리한 비결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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