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8일. 독도 인근에서 다수의 우리 어민들이 미군 오폭으로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일본 주둔 미 극동공군사령부 소속 군용기 9대가 우리 측에 사전 통고 없이 독도에서 폭탄 투하 및 기총 사격 훈련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미 군정청은 이 사고로 고기를 잡고 미역을 채취하던 어민 14명이 숨지고 어선 11척이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생존 어민들은 사상자가 150명을 넘고 파괴된 어선도 30척 이상이라고 증언했다.

그로부터 꼭 2년 후 경상북도는 이들을 기리는 ‘독도조난어민위령비’를 독도에 세웠다. 그런데 이 비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태풍 등 자연재해로 비가 파손됐을 가능성도 있으나 ‘52년 수산시험선을 타고 온 일본인 9명이 비를 파괴했다’ ‘53년 6월 독도에 무단 상륙한 일본인이 한국인을 쫓아내고 비를 훼손했다’는 등 일본인 소행이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이 비는 2015년 바다 밑에서 발견됐다.

6·25전쟁 혼란기와 그 직후 일본의 독도 침탈이 잦았다. 이때 이들의 침략을 막은 건 국가가 아닌 민간인이다. 53년 4월 창설된 독도의용수비대는 이듬해 7월 독도 경비 업무를 경찰에 넘기고도 56년까지 3년8개월간 독도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54년 11월 일본 순시선 세 척, 비행기 한 대와 벌인 총격전은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 측은 14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6·25 참전용사 홍순칠 주도로 탄생한 독도의용수비대에는 45명이 참여했다 최종적으로 33명이 남았다. 정부는 96년에야 이들의 공로를 인정해 홍 대장에게 보국훈장 삼일장, 나머지 대원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독도 경비는 독도의용수비대로부터 업무를 인수한 이래 줄곧 경찰이 맡아오고 있다. 정부는 레이더기지를 세우고(93년), 318전경대와 독도경비대를 통합해 울릉경비대를 창설(96년)하는 등 꾸준히 독도 경비력을 보강해 왔다. 현재 1개 소대 규모 경찰력이 상주해 독도를 지키고 있다.

경찰이 맡아오던 독도 경비 임무를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독도방어사령부 창설 시기와 규모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치안유지가 최우선 임무인 반면 군은 국토 방위다. 독도는 치안 수요가 거의 없는 우리 국토의 최전선이다. 논리상 군 임무가 맞는데 그동안 일본 눈치를 너무 봤다.

이흥우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