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라는데 여전히 밖에 나가기가 두려울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더위를 피해 수영장에 갔다가 몇 달간 수영장에서 얼굴을 마주치던 분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처음이란 말은 어폐가 있다.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뿐이지 늘 눈인사를 나누었고 수영 동작이 틀리면 서로 지적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샴푸나 물안경을 빌려주기도 했고 누군가 오랜만에 수영장에 나오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 네 명은 함께 강습을 받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늘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자유수영 회원이었다. 그런 우리가 지난주 처음으로 정식으로 통성명을 한 것이다. 수영을 마친 후 네 사람이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이 더운데 팥빙수라도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근처 카페로 들어가 팥빙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수영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20여년 전, 그녀에게는 커다란 불행이 찾아왔다고 한다. 남편이 갑자기 사고로 죽었다. 그녀는 알코올의존증이 생겼고 우울증이 심해져 죽으러 혼자 바다에 갔다. 서너 시간 동안 사위가 어둑해질 때까지 물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는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음날 집 근처 수영장에 등록했다. 좀 엉뚱하지만 바다 앞에서 그 나이 되도록 자신이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그녀는 죽기 전에 못해본 것을 해보기로 했다. 수영을 배워보니 뜻밖에도 재밌었다. 수영을 하는 동안은 머릿속에서 잡념을 몰아낼 수 있었다. 물속에서 손발을 휘젓고 나면 배가 고파 밥맛도 좋았고 가슴 속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꾸준히 수영을 하다 보니 우울증도 완화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인생의 가장 끔찍한 여름을 나고 있었던 거 같아요.” 다음날 다시 수영장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전날의 대화는 잊은 듯 서로 눈인사만 나누고 레인을 돌았다. 역시 여름 나기로 수영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수영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 뜨거운 뙤약볕 속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다고.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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