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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유대열 (7) 희생만 강요하는 북의 악함과 위선에 탈출 결심

출신 성분에 인생 좌우되는 북에 환멸, 북 정권 무너지는데 일조하기로 작정…미국으로 가기로 마음 먹어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27일 북한 근로자들과 청소년, 인민군 장병 등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 주석 부자 동상을 참배하고 있다. 유대열 목사는 25년 전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바라며 북한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연합뉴스

그렇게 난 공작원에서 해임돼 평안남도의 한 시청으로 발령이 났다. 거기서 시 행정경제위원회 지도원이 됐다. 강등된 셈이다. 그런데 얼마 후 같이 처벌받을 줄 알았던 몇몇 친구들이 다시 중국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학생 중에는 고위 간부나 대사관 간부 자녀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은 것이다. 고위 간부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성분이 좋지 않거나 권력을 쥐지 못한 부모를 둔 이들을 희생양 삼아 대신 감옥과 탄광에 보내거나 시골로 추방했다.

그때 비로소 인생이 뭔지 알게 됐다. 남보다 더 공부하고 더 일하고 더 애쓰면 잘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신념이었고 내가 배운 주체사상이었다. 너무 천진난만한 생각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체사상이라는 허울로 북한 주민들을 속였다. 내 부모도, 나도 결국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 대신 살아온 인생이었을 뿐이다. 언젠가는 다 뺏기고 그들을 위해 희생돼야 했던 게 우리네 인생이었다. 그후 내 모든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었다.

시에서 지도원으로 2년간 일하는 동안 이미 많은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군인들조차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내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는 “그렇게 고생하며 유학까지 가서 잘될 줄 알았는데, 이제 이렇게 강냉이밥도 겨우 먹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매일 우셨다. 나도 ‘김일성 김정일과 그 정권을 위해 충성한 것밖에 없는데 왜 내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싶었다. 북한 정권의 악함과 위선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는 하루속히 정권이 뒤집혀 다른 나라들처럼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1994년 7월 어느 날이었다. TV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흐느꼈지만 난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외쳤다.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흔들릴 것이고, 그러면 다른 나라처럼 자유의 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주민들도 동요하지 않았다. 모든 실권이 김정일에게 있었기에 북한은 끄떡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절망스러운 땅 북한에선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북한을 떠나 북한 정권이 무너질 수 있도록 뭐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미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북한 정권에 반대해 뭔가 꿈을 이루려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게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에 가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한은 미국에 큰소리를 치지만 실제로는 미국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미국으로 넘어간 탈북자 가족들은 어쩌지 못한다. 인권을 문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먼저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그렇게 북한을 떠날 준비를 했다. 가능한 한 부모님께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떠나는 전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께 “제가 지금 위가 많이 아파 약초를 좀 구하러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시골에 사시는 이모 댁에 며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아침을 먹은 뒤 배낭을 메고 대문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버지가 마당에 서 계셨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대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아직도 내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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