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다. 일본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학용품을 한 아름 사 왔다. 왕자 크레파스가 전부였던 어린이에게 모양이 날렵하고 색이 선명한 24색 색연필과 36색 사인펜은 신세계였다. 잠자리 모양 상표가 있었으니 톰보 제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져가 자랑한 기억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국산품 애용을 외쳤던 우리 세대에게 일제·미제는 아무리 좋아도 써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가 국산이라는 말에 크게 개의치 않게 된 건 길어야 15년쯤 전이다. 1980년대에는 코끼리표 전기밥통 여파가 워낙 컸다. 21세기가 오기 전까지 젊은이들은 워크맨이나 카메라를 고를 때 ‘잘 만든 일제’와 ‘키워야 하는 국산’ 사이에서 주춤거렸다. 하지만 알 파치노가 삼성 애니콜에 정신줄을 놓은 오션스13이 나왔던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그게 없어졌다.

우리 물건이 더 좋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국산과 일제는 기호의 차이에 불과했다. 도쿄 긴자의 학용품전문점 이토야에서 독특한 색의 잉크를 고르는 대학생에게 “너희 세대는 콤플렉스 없이 일제를 쓸 수 있어 다행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유니클로에 느끼는 감정은 실용적인 브랜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들어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시마노 소라급에서 티아그라급으로 자전거를 업그레이드했을 때를 빼놓을 수 없다. 국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한국 자전거 산업의 암울한 현실? 어차피 대만에서 출발해 미국에 자리 잡은 브랜드인 자이언트를 타는데 부속이 일제인지, 이탈리아제인지 따질 필요가 없었다. 2010년대 중반 동북아경제공동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우익 정치인의 역사왜곡 발언이 심해졌지만 정치는 정치, 경제는 경제라는 생각으로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으로 이런 생각이 많이 어긋났음을 깨달았다. 한 나라가 우월적인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나라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늘 있었다. 자유무역에 기초한 통상질서와 공동의 번영이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게 만든 국제질서의 한 특징에 불과하다. 그나마 각국이 인류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상대국에 선의를 보여야 성립한다. 우린 그걸 잊고 살았다. 지난해 우리의 대일무역적자는 29조2800억원이다. 한국경제의 대들보인 반도체 제조용 장비·부품은 6조7800억원 적자였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가장 잘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다른 나라와 거래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무역의 기본이라고 배우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단순한 무역수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입을 못하면 생산이 불가능한,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배웠다.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신감이 높아질수록 위험도 깊어간다는 사실도 국민 모두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 거세게 부는 불매운동은 감정을 공유하고 고조시키는 효과가 크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마냥 지속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아사히맥주가 싫다지만 지난해 우리나라는 주류·음료에서 대일흑자 1100억원을 기록했다.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의 대표 브랜드지만 의류 대일흑자는 50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백하다. ‘물건을 안 판다’는 일본의 위협이 먹히는 어이없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건 정부와 기업의 몫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민에게 기대지 말고, 선동적인 말로 감정을 자극해 국민을 앞세우지 말고 지금의 기형적인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분노는 조금씩 가라앉을 것이다. 처서가 오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뒤돌아볼 여유도 생길 것이다. 어설픈 봉합을 시도해서도 안 된다. 표가 되지 않는다고 계산기를 다시 두드릴 요량이라면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아베 정부에는 선의를 기대할 수 없다.

고승욱 편집국 부국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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