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이 패망으로 이끌었는데…” 일본서도 거세지는 아베 비판

원로 중심 한·일 관계 우려 목소리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 내부에서도 아베 내각의 ‘정치력 빈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2012년 일본 총리로 취임한 이래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신조 총리를 견제할 정치 세력이 사라지면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독선과 악수(惡手)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에서 2인자인 간사장을 지낸 고가 마고토(79)는 12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일강(一强) 체제’로 불리는 현 일본 정치를 ‘정치 빈곤 상태’로 정의했다. 고가 전 간사장은 2006년~2012년 자민당 내부 계파인 ‘고치카이’(현재 기시다파)의 회장을 지내며 자민당 내 온건파를 이끌었다. 중의원에서만 10선을 연임한 정치원로다.

고가 전 간사장은 “어떤 사람(아베 총리)이 말한 것에 대해 모두가 찬성하고, 아무것도 비판하지 않는다”며 “태평양전쟁 말기와 같은 정치의 빈곤”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내 군국주의 세력이 1941년~45년 태평양 일대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전쟁을 벌일 때 누구의 견제도 없이 독주해 일본을 결국 패망의 길로 이끌었던 일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빈곤이란 정치적 논의의 실종 상태를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4년간의 전쟁으로 300만명이 희생당했지만 대부분은 마지막 1년에 집중돼 죽었다”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 그때 멈췄다면 원폭도, 도쿄대공습도, 오키나와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가 전 간사장은 또 “과거 일본은 ‘국가의 힘을 강하게 하자’는 이념의 ‘세이와카이’ 계파(아베 내각)와 ‘경제 중시의 경무장(輕武裝) 노선’을 내건 우리 ‘고치카이’ 계파가 국민적 논의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왔다”며 정치적 세력 사이 경쟁과 견제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불통 일색의 아베 내각이 주변국 간 관계에서도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일본에서 대(對)한국 강경 기조를 주도하고 있는 이는 아베 총리와 그의 괴벨스라 불리는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다. 타국과의 외교 관계를 이끌어가야 할 외무성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총리 관저와 경제산업성이 보복 조치 선봉에 서면서 한·일 관계를 악화일로로 밀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야마다 다카오 마이니치신문 특별편집위원은 이날 ‘한국에 닿는 말을 해야’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에서 아베 총리의 소통 감각 결여를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국제 상식’을 근거로 한국을 비난하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며 “‘나는 이렇게 본다’는 식의 자기 성찰이 담긴 배려의 화법을 구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카니시 히로시 교토대 교수도 전날 같은 신문 기고문을 통해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 강화가 졸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나카니시 교수는 “한국 여론은 일본의 조치를 한국 경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한·일 여론을 상대로 정서적 반감을 불러일으킬 게 아니라 한국이 내부에서 스스로 외교정책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에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였다면 그 대상을 한국 전체가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대일 정책으로 명확히 한정했어야 했다”며 아베 내각의 외교력 부재를 지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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