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지금 시점에서 재정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의 정책 의지가 예산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해 달라”고 당부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앞서 국회에서 열린 ‘2020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서 내년 예산은 보다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를 가져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여당의 분위기를 보면 내년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날 게 확실해 보인다.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있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미·중 무역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한·일 갈등까지 불거져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잔뜩 위축돼 투자에 소극적이고, 민간 소비심리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사태 악화를 막고 경기 호전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확장적 재정정책 추진에는 신중해야 한다. 세수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장률 및 세수 전망, 고령화 속도 등 재정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 수출 부진, 투자·소비 위축으로 인해 내년 세수 전망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씀씀이를 늘리려다 보면 국채 발행을 통해 적자예산을 편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비공개로 열린 당정회의에서 내년도 예산 규모를 최대 530조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보다 12.9% 늘어난 규모다. 올해 예산 증가율(9.5%)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선심성 예산을 대폭 끼워 넣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 예산은 여당이 마음대로 주물러도 되는 쌈짓돈이 아니라 혈세다. 재정 건전성을 외면하고 무분별하게 예산을 늘리는 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짓이다.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데 긴요한 예산은 늘려야겠지만 낭비성 예산, 인기영합형 예산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예산만 늘린다고 경기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민간 경제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 개혁, 규제 완화, 비효율적인 제도 개선 등에도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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