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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문록] 세상의 많은 달관이들을 위하여


오늘은 나도 달관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육군 32사단 기동대대 소속 군견 7살 셰퍼드 말이다. 충북 야산에서 실종 소녀를 찾아낸 달관이는 단번에 ‘국민 군견’으로 떠올랐다. 경찰과 군, 소방요원 등 수천 명과 드론 10여대까지 동원된 수색이 열흘 만에 기쁜 소식으로 마무리된 건 알다시피 달관이의 공로가 결정적이었다. 같은 개로서 나도 뿌듯하고 흐뭇하다. 숲 덤불 사이에서 소녀의 냄새를 감지하고 확인한 달관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평소처럼 차분하고 자신 있게 임무를 완수했겠지. 달관이를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앞발을 세우고 앉아보았다. 군견들이 수색 대상을 찾아냈을 때 취한다는 ‘보고 자세’다. 달관이가 이 자세를 취할 때는 아침 일찍 외출하는 우리 누나가 노즈워크 장난감 속에 숨겨놓고 간 간식을 내가 곧장 찾아냈을 때와는 아주 다른 기분일 것이 틀림없다.

달관이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건 온 국민이 그만큼 소녀의 귀환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장맛비와 뙤약볕 아래 실종 열흘이라는 조마조마한 시간이 흐른 뒤 극적으로 소녀를 발견한 군견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게다가 5년 전 달관이가 군용트럭 철망을 뚫고 탈출했다 붙잡힌 ‘탈영’견이었다는 사실은 요즘처럼 핍박한 뉴스만 들려오는 시절에 유쾌한 감동과 반전의 생기를 부여한 셈이니까. 사람들을 돕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개 이야기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었다. 개들은 늘 사람의 조력자이거나 비호자였다. 아주 옛날 내 할아버지의 증조할머니의 고조부 때는 다 큰 개든 웬만큼 자란 강아지든 각자의 일이 있었다. 그 일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지, 개들 스스로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활약한 동물들에게 주는 훈장인 ‘디킨 메달(Dickin Medal)’을 받은 개들도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폭발물 탐지 작전을 했던 미 군견 셰퍼드 루카도 그중 하나다. 루카는 임무를 수행하다 화상을 입고 다리도 잃었다. 덕분에 당시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군인들은 다치지 않았다.

달관이나 루카 같은 군견, 경찰견, 마약탐지견, 인명구조견, 경비견, 안내견 등이 아니어도 사람을 위해 일하는 개는 지금도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에게 직업이 있는 것처럼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개들 말이다. 나처럼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개들이라고 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먹고 노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폭발물을 탐지하거나 정찰훈련을 받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감정 노동이다. 개와 사람들 사이에 항상 좋은 일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개 물림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여러 대책과 방안이 나온다. 품종과 크기에 따라 무조건 입마개를 착용하게 해야 한다거나, 사고를 낸 개를 안락사시키라는 논란이 거세진다. ‘고양이 할큄 사고’나 ‘벌 쏘임 사고’가 일어났을 때보다 더 큰 논란거리가 된다. 그건 사람들과 개가 맺은 관계가 고양이나 벌과의 관계보다 더 깊고 친밀하고 오래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더 치명적이어서가 아니라.

개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이 개를 살리기도 한다. 가끔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될 개를 죽이기도 한다. 달관이와 포상을 요청한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개와 사람 간 이야기가 늘 이같이 훈훈하고 사랑스러울 수는 없는 걸까. ‘보고 자세’를 한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최현주(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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