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없는 내 모습 발견… 미국 집회 중단하고 귀국

홍예숙 사모의 성경적 신유의 은혜 <7>

홍예숙 서울 대망교회 사모가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교회에서 열린 금요치유집회에서 파킨슨병 환자에게 치유기도를 해주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 집회를 인도할 때는 마이크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기도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통성기도를 어떻게 확산시켜야 할지도 몰랐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하나 꼼꼼하게 가르쳐 주시며 섬세하게 화답해 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하나님을 잊기 시작했다. 내가 기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착각했다. 초라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능력을 소유한 자인 것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교만하지 마라. 첫사랑을 잃지 마라.” 하나님은 혼자 있는 시간이면 수없이 속삭이셨다. 그때마다 항변했다. “나, 잘하고 있잖아요. 아시잖아요.”

미국 집회는 계속됐다.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이 모였다. 말씀과 기도, 안수로 기적이 계속됐다. 내가 마시던 물만 마셨는데 병이 낫는 체험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집회 때 일이다. 안수하고 있는데 늘 옆에 계시던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저만치 혼자 계셨다. “예수님, 거기서 뭐 하세요. 저와 함께하셔야지요.” “나 없이 너 혼자 잘하는데 내가 왜 필요하니?”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집회를 더 인도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없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얘기를 듣더니 모두 말렸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한창 전성기인데 집회를 접으면 어떻게 해.” ‘하나님 앞에서 전성기가 무엇이며, 어떻게 왔는가가 다 무엇인가.’ 그저 하와처럼 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대구 주암산 기도원으로 향했다.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잘 안 됐다. 좀처럼 교만이 꺾이지 않았다. 미국의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하나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내가 여기에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찬양했다. 하지만 억지로 하는 찬양이었다. 기도했다. 하지만 원망하는 기도였다. 모세가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나왔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처음 미국에 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기도원에선 부흥회가 계속됐다. 우스워 보였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속에서 불이 났다. “하나님, 광야는 싫어요. 내가 왜 다시 여기에 있어야 하죠.” 수없이 외쳤다. ‘내가 부흥회 할 때는 앉은뱅이도 일어났는데…. 내가… 내가….’ ‘내가’가 수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성경책을 툭 하고 펼쳤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영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셨다. 호흡까지도 다시 하나님께 맡겨야 했다.

2차 금식이 시작됐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지, 잘났다고 그렇게 요동치던 내 마음을 한순간에 제압해 버리셨다. 사랑하신다는 그 한마디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 순간 죄인임을 알게 됐다. 수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평안을 구했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평안해.” 평안치 않았기 때문에 부른 찬양이었다.

비참한 내 인생이었다. 그런 내가 하나님을 만나 많은 사람에게 환호를 받을 만큼 놀라운 인생을 살게 됐다. 그런데 또 자아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괴롭기 짝이 없었다. 빛도 없이 성치 못한 몸을 갖고 사는 인생으로 돌아간다는 게 정말 싫었다.

그러나 나도 몰래 찾아온 교만과 아집을 떨쳐버려야만 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식해야만 했다. 수없이 울었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울었다. 금식하기 싫어 울었고 밥 먹고 싶어 울었다. 20일쯤 지났을 때 천국을 다시 보게 됐다. 마음에 감사가 일어났다. 30일이 지나자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의 말씀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셨다. 교만해지려 해도 교만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돌보심으로 40일 금식을 마치고 보호식에 들어갔다. 장기 금식은 보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장기 금식을 마친 뒤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막 먹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보호식 동안에도 자신과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자아가 죽는 과정인 셈이다. 먹는 것을 아무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금식 후에는 유혹이 따른다. 그 유혹을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호식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처음에는 된장을 조금 푼 물을 먹어야 했다. 이튿날에는 쌀뜨물 같은 연한 미음을 먹었다. 그것을 한 3일 동안 먹었다. 이때의 유혹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5일째가 됐을 때 곱게 간 미음을 먹었다. 이 미음을 10일 정도 먹어야 한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밥을 먹고 싶다고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위장을 다 버린다. 15일 정도 지나 통죽을 먹었다. 물김치도 먹었다. 물김치는 국물만 먹어야 한다. 밥을 먹기까지는 금식한 날만큼 죽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30일에서 40일이 지나면 밥을 먹는다. 그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금식은 너무 힘들었다. 꼭 해야 한다면 해야겠지만 순종하는 게 그보다 낫다. 그 후로는 금식을 하지 않고 순종하려 애쓰고 있다.

홍예숙 사모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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