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법률지원단의 전가영 김현아 안지희(왼쪽부터) 변호사가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낮은 수임료에도 법률지원단에 자원했다. 권현구 기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최근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를 돕는 법률지원단을 모집했다. 처음에는 법률지원단을 10명 이내로 모집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싶다’며 열정 가득한 지원서를 보내왔다. 이에 한사성은 지원자 25명(변호사 22명, 학자 3명)을 모두 위촉해 지난달 초 법률지원단을 꾸렸다. 이 가운데 3명을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김현아(법무법인 지엘), 안지희(법무법인 위민), 전가영(사단법인 선) 변호사다. 세 사람은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하면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불법촬영 피해자 지원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안지희(안): “피해자가 촬영, 유포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로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해당 범죄가 ‘동의하지 않은 촬영, 유포’여야 돼요. 그런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인관계였다면 입증이 정말 쉽지 않아요. 경찰이 ‘동의 여부’ 판단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하거든요. 수사기관은 일단 ‘연인 사이니까 그냥 찍어줬겠지’ 하는 생각이 전제에 깔려 있어요.”

전가영(전): “사건을 보면 주로 여자가 자고 있을 때나 술 마셨을 때 남자친구가 옷을 벗겨서 찍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피해자가 카메라를 잠깐이라도 봤다고 하면 경찰관이 ‘카메라 봤는데 무슨 부동의냐’ 이렇게 얘기해요. 하지만 피해자는 술에 취해 카메라를 보더라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김현아(김): “심지어 일부 경찰은 영상에 피해자 얼굴이 나오면 무조건 (촬영에) 동의했다고 봐요. 피해자가 카메라를 안 봤는데도요. ‘이렇게 대놓고 찍었는데, 사진 구도상 (찍는 걸) 모를 리 없다’는 논리인 거죠. 변호인이 아무리 ‘피해자 표정을 봐라 이상하지 않으냐,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안 들어요.”

안: “제가 담당했던 사건에선 동영상 안에 피해자가 ‘찍지 말라’ ‘그만 찍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서 겨우 처벌이 가능했어요. 이런 증거가 없으면 정황을 따져야 하는데, 연인 사이에선 이런 정황들이 90%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가해자들은 보통 ‘촬영에 동의했다’면서 애정행각을 벌인 평소 사진, 카카오톡 대화 캡처를 제출해요. ‘이것 봐라. 이렇게 잘 지내는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는 거죠.”

-사이버 성폭력 피해 사건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나요.

김: “수사관의 성인지감수성, 의지에 따라 양형이 너무 다르게 나오는 것도 문제예요. 특히 아동 그루밍(길들이기) 범죄에 대해 ‘이게 왜 성범죄냐’고 생각하는 경찰이 많습니다. 보통 성인이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등에서 미성년자를 만나 애착관계를 형성한 뒤 신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식으로 범죄가 이뤄지죠. 어린 친구들은 요구를 들어주다가 뒤늦게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이미 보낸 사진 때문에 협박을 당합니다. 경찰은 성범죄가 아니라 단순히 ‘협박죄’로 입건하고 수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경찰 논리는 ‘(미성년자에게) 네가 직접 사진을 주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전: 해외에선 이런 경우 아이들의 미성숙함을 이용해 성적으로 착취한 걸로 보고 강하게 처벌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법을 적극 해석해 그루밍 범죄를 강제추행죄로 처벌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수사관들이 징역 2년 이하밖에 안 되는 협박죄를 적용해요.”

안: “압수수색도 잘 안 해줘요. 전 연인과의 성관계 영상을 올린 가해자들은 보통 ‘내가 유포 안 했다’ ‘휴대폰을 잠깐 잃어버린 사이 유포됐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럼 피의자의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압수수색해 업로드 기록을 확인해야 하는데, 안 해요. 정준영이나 앵커 김성준씨 사건처럼 유명인이 연루된 경우엔 디지털 포렌식을 다 하죠? 일반인 사건에선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전관 변호사를 써서 요구했더니 그때야 움직인 적도 있어요.”

-지인 얼굴과 나체를 합성한 ‘페이크 포르노’ 사건도 심각하다고 들었습니다.

전: “문제가 많아요. 합성 기술이 발달해 진짜 그 사람처럼 보이는데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이 안 됩니다. 지인 얼굴을 합성 전문 업체에 맡겨 야한 영상이나 사진에 합성시켰는데도 기껏해야 음화제조죄로밖에 처벌이 안 되더라고요. 유포까지 가도 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가 적용돼요. 이 죄들은 1년 이하 징역 정도로 형량이 되게 낮아요.”

김: “페이크 포르노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불법촬영 피해와 다를 게 없거든요.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얼굴이 나오지 않고 진짜 내 몸 영상이 공유되고 있는 것과, 내 얼굴에 다른 사람 나체가 붙어서 유포되는 것 중 어느 게 더 고통스러울까요. 신체가 내 것이 아니라고 해서 수치심이 덜 드는 게 아니잖아요.”

안: “법이 기술 발달을 못 따라가고 있어요. 얼마 전 대법원이 리얼돌(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본떠 만든 성인용품)에 타인 얼굴 합성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도 마찬가지죠. 만약 지인 여성의 얼굴을 한 인형과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촬영해 유포한다면 과연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요. 민사상으로 정신적 피해를 묻는 것밖에 안 될 수도 있는 거죠.”

-사이버 성범죄 근절을 위해 더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요.

김: “법이 꾸준히 개정되고 있긴 하지만 현장에 있어보면 여전히 부족해요. 불법촬영물 유포 혐의 처벌이 징역 5년 이하인 건 너무 약합니다. 통신비밀보호법에서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면 징역 10년 이하 처벌을 받아요. 이보다 형량이 낮은 게 말이 안 되잖아요. 특히 유포는 벌금형을 없애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지금 열심히 지워도 누군가 갖고 있다가 어느 날 언제든 유포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평생을 괴로워하거든요.”

안: “수사관들의 의지, 관련법 정비, 인력·예산 마련 등 다각적으로 제도가 마련돼야 사이버 성폭력 문제 해결의 여지가 보일 거라 생각해요. 특히 불법촬영 영상을 필터링하지 않는 웹하드 사이트 문제의 경우 이런 범죄가 사업성이 없도록 정부가 법을 개선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하고 과징금, 영업정지 등 다양한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해요.”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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