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4일 서울 남산도서관 옆 조선신궁터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최현규 기자

“어린 시절 엄마는 전쟁 때 군인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자랑을 했었어요.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겁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배우 한지민씨의 목소리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장에 울려 퍼졌다. 이미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딸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였다.

“다친 어깨와 허리 탓에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건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거를 숨기려 했고 딸도 모른 체하고 살았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수요시위(수요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딸도 어머니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됐다.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진정한 사죄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딸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고통과 싸웠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 같구나’.”

기념관에 모인 참석자들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딸이 보내온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제정된 기림의 날 기념식에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그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14일 1400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맞아 해외 11개국 24개 도시에서도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가 개최됐다.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 나르시사 클라베리아 할머니가 마닐라에서 열린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직도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사죄,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1400번째 외침이 울려 퍼졌다.

시민 2만명은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400차 수요시위’에서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외쳤다.

일본 도쿄에서도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했다. 연합뉴스

이날 집회는 서울을 비롯한 국내 13개 도시와 일본 영국 호주 등 세계 11개국 24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세계 연대집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집회에선 각국의 연대성명 및 연대영상 메시지도 상영됐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사람”이라며 “여러분이 함께 힘을 많이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1500차 시위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담보로 진행되지 않도록 여러분도 함께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박구인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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