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직후 제3국에서 진행하려던 한·일 외교차관회담이 14일 전격 취소됐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강공으로 맞서면서도 외교적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있지만,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세영(사진) 외교부 1차관과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당초 오는 16~17일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비공개로 만나 한·일 갈등 해법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장소로 필리핀 마닐라와 미국령 괌이 거론됐다. 회담 성과에 대한 부담감 없이 현안을 기탄없이 논의하기 위해 중립지대에서 비공개로 만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4일 오전 국내 한 매체가 회담 추진 사실을 보도하자 한·일 양측이 회담을 즉각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국 입장차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회담의 성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공개돼버린 회담을 강행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위안부 문제를 평화와 여성 인권에 대한 메시지로서 국제사회에 공유하고 확산해 나가겠다”는 글을 올린 것이 일본을 자극해 회담 취소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 메시지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는 국제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 측에 위안부 합의 준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정상의 메시지 중 위안부 합의를 위반한 내용은 없다”고 일축하면서 “일본 측의 이런 문제제기야말로 양국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는 한·일 외교차관회담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과의 대화 채널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16~17일에 만나지 않는다는 것일 뿐, 앞으로의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측은 다음 주 중국 베이징 외곽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간 양자회담 개최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일본이 하고 있는 경제보복의 부당함을 주요 7개국(G7)에 알리는 여론전에도 돌입했다. 일본이 오는 24~26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선제적인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G7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다. 한국은 회원국이 아니어서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이탈리아와 독일을, 윤강현 경제외교조정관은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13일 출국했다. 이들은 방문국 외교 당국자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윤 차관보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하는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G7 중 미국은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이, 캐나다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방문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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