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해외 첫 파병은 베트남전쟁 때였다. 1964년 9월 의료진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으로 물꼬를 텄고 이듬해 전투병으로 확대돼 1973년까지 32만여명이 참전했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참전으로 공산화 위기를 넘겼던 터라 미국의 파병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을 테지만 대가는 참혹했다. 우리 장병 약 5000명이 전사했고 1만명이 부상했다. 후유증이 커 파병은 한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았지만 1991년 걸프전 때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비전투병력을 파견하면서 재개됐다. 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후에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차원의 여러 차례 소규모 파병과 유엔 결의에 따른 아프간·이라크전 파병이 이뤄졌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는 지금도 우리 군이 파병돼 활동 중이다. 유엔 결의에 따라 2009년 3월부터 구축함을 주축으로 한 청해부대를 파견, 해적 퇴치와 상선 보호 작전을 펼치고 있다. 청해부대는 6개월 단위로 교대 파병되는데 지난 13일 제30진인 강감찬함이 대조영함과 임무 교대하기 위해 부산항을 떠났다.

최근 강감찬함의 임무 확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이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호위 연합체를 꾸리자며 우방국들에 파병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강감찬함이 작전지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연합체에 참여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국방부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이 지나는 이 해협의 통행 안전이 보장돼야 하는 건 물론이다. 하지만 파병이 해협의 긴장 해소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란에 인접한 호루무즈해협의 긴장이 고조된 것은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며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금지 등 경제 제재를 가하고 나서다. 연합체는 원유 수입량 대부분을 이 해협을 거쳐 들여오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장기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파병하면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맺어온 이란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관계도 험악해질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파병을 거부했고, 일본도 연합체 참여 대신 독자적인 활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체는 유엔이 아니라 미국의 구상이다. 한·미 동맹, 북핵 문제, 한·일 갈등,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지만 파병 여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결정해야 한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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