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다녀봤자 미래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김모(23·여)씨는 지난해 11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으로 한 건설업체 취업에 성공했지만 5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임금은 만족스러웠지만 단순 사무 보조업무만 반복하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대표가 시키는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정해진 일 없이 잡무를 다했다”고 말했다. 7명 규모의 사업장에서 전공인 회계 분야는 별 쓸모가 없었다. 정부 지원이 끊겨도 계속 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단순 업무 보조는 직무능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 김씨는 대학 졸업 전 “일단 취업부터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교수의 제안에 청년일자리 사업에 지원했는데, 업체 정보나 직무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처럼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 중도이탈자들은 퇴사 이유가 영세 중소기업의 저임금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일보가 15일 접촉했던 청년들은 자신들을 1~2년짜리 값싼 소모품처럼 여기는 근로환경에 실망했다는 토로를 쏟아냈다. 중앙정부는 예산 집행을 통한 고용률 제고 성과에, 지방자치단체는 취업자 수 증가라는 실적 경쟁에 매몰돼 청년일자리의 질은 외면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도이탈 청년들은 채용 사업장이 좋은 일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순 노동을 하거나 정해진 직무 외에 마구잡이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모(26)씨 역시 지난해 12월 의료기기 업체에 다니다 5개월 만에 그만뒀다. 설계직으로 지원했지만 맡겨진 직무는 생산직이었다. 이씨는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취업이 되지 않다 보니 급한 마음에 일단 회사에 들어갔다”며 “경력을 쌓는다는 느낌은 없었고 다닐수록 점점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고용 불안도 청년들의 중도이탈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전남의 한 유니폼 제조업체에 채용된 서모(27·여)씨는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서씨는 “계약이 끝나면 내가 서른이 되는데, 그때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다”고 말했다.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지침에 보면 서씨가 지원한 사업 1유형(지역정착지원형)의 경우 2년간(1년 추가 가능) 1인당 연 2400만원 수준의 임금 중 80%를 정부가 지원하고, 지원이 종료된 후에도 기업이 청년을 계속 고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업의 심각한 경영난’ 등 예외가 인정된다. 서씨는 “시에서는 ‘정부 지원사업이니까 고용이 보장된다’고 얘기하는데 현장에서 직접 보면 그렇지 않다”며 “자영업자들은 사업이 어려워지면 쉽게 접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 결국 계약이 끝나면 난 또 다른 곳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년 적합형 사업장이 아니다 보니 구직자들이 이 사업을 취업 공백을 메울 ‘임시 돈벌이’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 마을기업에 청년을 연계해주는 부산의 민간취업연계형 사업에 참여했다가 퇴사한 배모(26)씨는 “생긴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업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와 홍보자료용 사진 찍기 정도였다”며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곧바로 알았지만 지원자들 사이에선 ‘우리가 낸 세금인데 (임금은) 받아 가자’라는 말도 나왔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중소·중견 기업에 다니는 청년의 경우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공제금을 적립해 최대 3000만원 목돈을 만들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기업에서 당장 채용을 위해 중복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해주지 않다가 청년이 뒤늦게 알고 퇴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업주들도 불만은 쌓였다. 청년들이 안정적이고 편한 일자리만을 찾는다는 토로가 많았다. 제주의 한 관광 상품 판매 업체 대표 A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 올해 2명을 채용했지만 현재 모두 그만둔 상태다. A씨는 “청년들이 나인투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만을 고집하면서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난감한 상황”이라며 “일을 하겠다는 청년이 있으면 감사한 상황일 정도”라고 말했다. 업무 특성상 주말에 근무가 집중돼 평일 대체 휴무를 쓰도록 했는데 청년들이 기피했다고 한다. A씨는 “근처 다른 사업장은 급여가 더 낮은데도 주중 근무조건이어서 인기가 많다”며 “결국 청년들이 ‘편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청년 모집 자체에 애를 먹다 ‘울며 겨자 먹기’로 휴학생까지 채용한 사업장도 있었다. 당연히 복학 시점이 되면 중도이탈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북의 한 식자재 유통업체는 이 사업에 참가할 청년 5명을 뽑았지만 이 중 3명이 ‘복학’을 이유로 중도이탈했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라는 사업 취지를 고려해 휴학생 및 대학원생을 제외시키는 지자체도 있지만 전북은 별도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이 업체 인사담당자 B씨는 “원래는 졸업생을 뽑으려고 했는데 현장업무가 많은 업체 특성상 지원하는 청년이 없었다”며 “소규모 업체라 휴학생까지 배제하기에는 지원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경남의 한 식품제조업체 대표 C씨는 “영세업체다 보니 일이 고된 날에는 차비라도 좀 챙겨주면서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임금 수준은 정부 지원을 받아 최저임금 이상으로 맞춰져 있지만 영세업체 특성상 청년들이 원하는 근로조건까지는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 일환으로 ‘지역명소 활성화추진단’을 꾸려 지역 내 회원제 골프장 내장객 응대 업무 채용을 진행했지만 출퇴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청년들이 지원하지 않아 실패했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질적인 사업이 되려면 정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결과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 등 촘촘한 사업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사업은) 이런 부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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